나는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그리고 떨어졌다.

불합격 이후에 찾아온 나의 길

by 온 이든

나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졸업하면 당연히 우리 대학병원에 취업할 거라고. 무슨 근거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저 당연한 미래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그래서 4학년 1학기 동안 다른 병원에는 입사 지원서를 한 군데도 넣지 않았다.


그리고 2학기 중간, 모교 병원에 응시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 통보를 받았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떨어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해에는 병원 내 정책이 바뀌어 타 대학 출신 학생 비율을 조금 높이기로 했고, 그 영향으로 유독 모교 출신을 많이 뽑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같았다. 나는 떨어졌다.


한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취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고향을 떠난다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대구에 남아 작은 병원에 취업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신규 시절만큼은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큰 병원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혹여 놓칠세라 학과 사무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취업 공고를 확인했다. 그러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이 아직 모집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랴부랴 지원서를 냈다.


그 병원의 첫 전형은 서류와 필기시험이었다. 시험 과목은 전공과 영어 두 가지. 막막했지만 선배들을 통해 그 병원의 역대 입사 시험 족보를 구했다. 그런데 그 분량이 A4용지 10포인트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두꺼운 책 한 권 수준이었다. 거의 전공 서적을 방불케 하는 양이었다.


같이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이걸 다 본다고 시험에 나온다는 보장도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걸 끝까지 봤다. 정말 고3 수험생처럼 줄을 긋고 외우며, 단 한 문제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어느덧 필기시험 날이 다가왔다. 시험 장소가 병원이 아니라 근처 대학교 강의실이라는 공지를 보고 조금 의아했는데, 시험 당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원자가 무려 600명이나 되었고 병원 안에서는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지원자들을 보니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졌다. 괜히 서울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지원자들은 수험번호에 따라 여러 강의실로 나뉘어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속으로 함성을 질렀다. 기출문제 족보에서 상당수가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우리 중에 그 두꺼운 족보 책을 끝까지 파헤친 나와 친구 단 두 명만 합격했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응시자 600명 중 1차 합격자는 34명, 그리고 면접에서 다시 절반이 떨어지고 최종 합격자는 17명이었다. 그 17명 안에 내가 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특별히 똑똑해서 합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은 미련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 안에서 꿋꿋하게 최선을 다 했을 뿐이다.




그 시절 나는 정말 절박했다. 취업이 안 될까 봐 두려웠고, 그래서 공부하면서도 계속 같은 말을 되뇌었다.


“합격하게 해 주세요. 제발요.”


나는 숨 쉬듯 계속 기도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실습을 할 때도 마음속에서는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 나는 병원 데이 실습 중이었다. 실습 중이라 직접 홈페이지를 확인할 수 없었는데 교대 시간이 될 즈음, 이브닝 번 친구가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왔다.


“이든아, 너 합격했어! 축하해!”


“진짜?”


그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온몸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그동안 조여 있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같은 말을 되뇌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병동 복도와 병실을 오가며, 실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계속 그 말을 반복했다. 지금도 그날의 두근거리던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첫 병원에서 나는 암 환자 간호에 첫 발을 내디뎠고, 이후 21년째 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대단히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는 중요한 순간마다,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힘들어도 버텼던 그 순간의 내가 가장 대견하다.


나에게 특별히 반짝이는 재능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버티는 삶도 재능이라면 나는 그 재능 하나는 조금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오늘도 그 버팀의 재능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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