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1,900원,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피자빵

자동차 배선 공장 QC

by 온 이든

나의 대학 휴학 시절은 기름 냄새와 수백 가닥의 전선으로 기억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 내가 선택한 곳은 현대자동차 계열의 배선 공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QC(품질관리) 업무를 했다. 하루 종일 작업대 앞에 서서, 눈알이 빠져라 수백 개의 배선을 훑어보며 불량을 찾아내는 일. 다리가 퉁퉁 붓고 눈이 침침해지는 고된 노동이었다.


그때 내 시급은 1,900원. 지금 들으면 "라떼는 말이야" 소리가 절로 나오겠지만, 그땐 그 돈이 내 꿈이고 미래였다.


일과는 단순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정규 근무?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이어지는 '잔업(1.5배 수당)'은 기본이었고, 밤 9시부터 12시까지 이어지는 '철야(2배 수당)'는 나의 주 무기였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대학생이면 편하게 과외나 학원 강사를 하지, 왜 굳이 힘든 공장을 갔어?"


하지만 그건 현실을 모르는 배부른 소리였다. 과외 시장은 냉정했다. 나는 명문대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은 과외 자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학원 역시 나 같은 휴학생은 정규 강사가 아닌, 시급이 높지 않은 아르바이트로만 채용을 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자리, 찔끔찔끔 들어오는 용돈 벌이로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내가 일한 만큼, 시간과 땀에 비례해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 ‘철야 요정’이 되어 늦은 밤 공장의 불을 밝혔다.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는 어렵게 구한 중학생 과외와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까지 뛰었다. 그렇게 내 20대는 쉴 틈 없이 굴러갔고, 덕분에 통장은 아주 조금씩 살이 올랐다.


자정이 넘어서야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꾸벅꾸벅 졸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 나를 내려주었다. 집까지는 걸어서 25분. 버스비 몇백 원이라도 아끼려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나에게 고난의 길이었다.


터미널 근처라 밤늦도록 불을 밝힌 노점상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떡볶이, 어묵, 닭꼬치, 호떡...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허기진 배가 요동을 쳤다. 냄새는 폭력적일 만큼 달콤했다. 하지만 나는 주머니 속 천 원짜리를 만지작거리며 꾹 참았다. '이 돈이면 내 30분 치 노동이야. 참자. 참아야 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분명 공장에서 저녁도 챙겨 먹었는데,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매일 배가 고팠던 걸까. 종일 서서 일하는 고된 노동 탓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덜 큰 청춘이라서 그랬는지. 그날따라 유독 속이 쓰릴 정도로 배가 고팠다. 철야까지 마치고 텅 빈 속으로 걷는데, 고소한 치즈 냄새가 내 발목을 잡았다.


'미니 피자 1,000원.'


반으로 접으면 종이컵에 쏙 들어가는, 딱 그만한 크기의 작은 피자빵.

나는 큰맘 먹고 지갑을 열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나에게 주는 근사한 선물이었다. 따끈한 피자빵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행복감이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크게 입을 벌려 앙, 하고 한 입을 베어 무는 바로 그 찰나였다.


툭!


내 소중한 피자빵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그것의 정체는... 하얀색과 검은색이 오묘하게 섞인, 아주 신선한 '새똥'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방금 한 입 베어 문 따끈한 치즈 위, 그 정중앙에 새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가 보였다.


'왜... 하필 나야?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길 한복판에 서서 나는 심각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오늘 하루 종일 이걸 먹고 싶어서 참았는데...


"이 부분만... 떼어내고 먹을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새똥 묻은 부분만 살짝 걷어내면 밑에는 멀쩡한 빵이지 않을까? 아까운데... 너무 아까운데... 배가 너무 고픈데...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마 새똥 토핑이 된 피자빵을 먹을 순 없었다. 다시 하나를 사 먹기엔 돈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나는 떨리는 손으로 피자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25분 내내, 나는 엉엉 울었다. 피자빵이 아까워서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하필 내 피자빵에 조준 사격을 한 저 망할 놈의 새가 원망스러워서 울었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 퉁퉁 부은 눈의 나에게 동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새똥 피자 사건'을 털어놓았다.


"아니 그래갖고, 한 입 먹었는데 새똥이...! 아.. 지금도 눈물 날라 그래요"


내 딴에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비극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던 언니들과 이모님들은 밥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깔깔대며 넘어갔다. 대구 토박이들의 걸쭉하고 따뜻한 위로가 쏟아졌다.


“야 이든아! 니는 될 놈이다! 그거는 복권 당첨보다 어, 더 어려운기다.” “니 왜이래 시트콤이고! 하하. 아줌마가 피자 한 판 사주께. 같이 묵자~!”


사람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어젯밤엔 비극이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희극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피자 한 판 사주겠다는 이모님의 그 말이, 새똥 맞은 서러움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래, 웃었으면 됐다. 내 1,000원짜리 피자빵은 공장 사람들에게 몇 배의 웃음을 주고 장렬히 전사한 셈 치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 새똥 맞은 날도 버텼는데 뭘 못하겠어.


나는 작업 장갑을 고쳐 끼고 다시 작업대 앞에 섰다.


지금도 가끔 피자빵을 보면 생각난다. 치열했던 나의 1,900원짜리 청춘, 그리고 눈물 젖은... 아니, 새똥 맞은 피자빵의 맛이.


(** 작가의 말: 대구 사람이라 대화체는 경상도 사투리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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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든의 덧붙임

- QC (Quality Control):

품질 관리. 제품이 출하되기 전 불량이 있는지 검수하는 업무다. 단순 반복 작업 같지만, 수백 개의 배선 중 단 하나의 오류도 놓치지 않으려는 매의 눈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 시급 1,900원:

2000년대 초반의 통상적인 아르바이트 시급. 2,300원까지 주는 곳도 있었으나, 그 당시 나는 용역계약직 신분이어서 조금 더 시급이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라떼는 말이야 (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를 비슷하게 들리는 영어 단어로 풍자한 유행어. 보통 기성세대의 잔소리를 비꼬는 말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