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았던 선택들
나는 대학 생활을 비교적 알차게, 어떤 시선에서는 꽤 빡빡하게 보냈다.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동아리 활동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대학 생활의 상당 부분은 ‘알바의 역사’로 기록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학비와 용돈.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는 말도 사실이지만,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존심 역시 분명히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지금처럼 구인구직 사이트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라 나는 ‘벼룩시장’과 ‘교차로’를 뒤적이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중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은 이마트 카트와 주차 요원 일이었다.
1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이력서를 들고 주차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저 이 일 정말 하고 싶어요. 저 힘도 세요. 태권도도 했어요.” 사실 거의 사정에 가까웠다. 문제는 카트 요원이 ‘남자만 뽑는 자리’였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어서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그만둘게요. 한 번만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팀장님은 그런 내가 안돼 보였는지, 반쯤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한번 해봐요.”
그날부터 나는 그 주차 사무실의 전무후무한 홍일점 카트 요원이 됐다.
나는 일부러 더 많은 카트를 끌었다.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잘해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카트 요원 일을 마치고 나오던 어느 날,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1층 맥도날드 유리문에 붙은 종이 한 장.
‘마감 청소 아르바이트 구함’.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일을 한 김에 거기서 한두 시간 더 한다고 몸이 부서질 것도 아니었다. 운 좋게도 나는 카트 요원 → 맥도날드 마감 청소까지 일을 할 수 있었고, 그 생활은 석 달 동안 이어졌다.
개강 후엔 맥도날드는 정리하고, 이마트는 주말 근무로 바꿨다. 그렇게 주말, 공휴일 근무자로 대략 4년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주차 안내 요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전기는 하루 종일 울렸고, 어느 층이 만차인지, 어디로 안내해야 하는지 쉼 없이 공유했다. 가끔 한가할 땐 채널을 돌려 근무자들끼리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왠지 그 지지직하던 무전기 소리가 싫지 않았고, 그 속의 동료들 목소리가 힘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은 지금까지도 함께 가는 25년 지기다. 우리는 가끔 근처 벤치에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앉았다. 안주는 없었다. 대신 쓸데없이 거창한 인생 토론이 있었다. 각자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돈은 얼마나 벌고 싶은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오는 포부들이었다. 그땐 그게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귀여웠다.
월급날이 되면 우리도 큰 맘을 먹었다. “우리도 오늘은 고기 좀 먹을까?”
그리고는 평소엔 쳐다보지도 못하던 ‘와인 숙성 삼겹살’을 사 먹었다. 사실 그냥 동네 고깃집이었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는 그 트렌드가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고기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들처럼 행복해졌다.
태풍 ‘매미’가 대구를 강타했던 늦여름도 그 친구와 함께였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 그대로 집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결국 우리는 이마트 근처 허름한 여관에 몸을 피했다. (오해는 말자. 그 친구는 여자다.)
퀴퀴한 냄새가 나던 그 방에서조차 우리는 깔깔 웃었다. 마치 엉성한 MT에 온 것처럼. 젖은 운동화를 벗어놓고, 이상하게도 그 밤은 하나도 비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얼마 안 되는 여관비라도 낼 수 있는 형편이 된다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물론 그 시절이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카트를 끌다 팔과 손목이 아파서, 아무도 없는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한참을 울다 나온 적도 있다. 금수저, 은수저가 부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나는 울면서도 버티는 쪽을 선택했다.
울어도 괜찮고,
버텨도 괜찮고,
포기해도 괜찮다.
인생의 선택은 한 번뿐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선택 이후였다. 뒤돌아보며 자책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 다시 다가오는 선택 앞에서만큼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의 나를 믿어주는 것.
나는 대단히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진 않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근거 없어 보이는 '자존감' 하나만큼은, 이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통과하며 쌓아왔다.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가끔은 맵기도 한 인생의 맛 속에서, 어떤 경험이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근육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고, 무엇보다 마음이 단단해진다는 걸 느낀다.
40대의 한가운데에서, 오늘은 또 어떤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