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맷 Jun 09. 2024

잠재문학실험실


헤몽 크노는 20세기 초반 무의식과 우연성에 기대어 언어 실험을 하는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을 하다가 그만 접었다고 했다. 그 후에 사르트르가 크노를 만나서 초현실주의 활동에서 얻은 게 무어냐고 물어봤을 때 크노는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청춘을 가진 적 있었다는 느낌." 사르트르는 그를 부럽다고 적었다.


나는 헤몽 크노의 대표작도 모르고 실험적인 문학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저 이야기만은 기억에 남았다. 청춘을 가진 적 있었다는 느낌. 기성 문학에 대한 반운동으로 열정을 다 바친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이 이야기를 20대 중반에 접했는데 그때는 연속되는 삶에 대해 이른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누군가가 내 20대에 대해서, 젊음에 대해 물었을 때 그때는 청춘을 가진 적 있었다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로 기억될 강렬한 사건을 바랐다. 베르나르 포콩이 사진을 싣고 앙토넹 포토스키가 쓴 포토에세이 『청춘, 길』 서문에서 "거리를 걸을 때면 나는 누군가가 나를 납치해주기를 꿈꾸곤 했다. 내 등뒤로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서 이번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라고 썼던 것처럼. 그런 걸 바랐다는 건 물론 아니야. 나는 밤길을 걷는 건 너무 무서워하니까.


20대 초반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서울 시내버스들이 네 가지 색으로 나뉘어 개편되던 시기였고 시급이 3700원쯤 하던 때니까 꽤 옛날이지만 아직 내 젊음을 회상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다만 요즈음은 나중이 되면 많이 그리워지겠다고 생각한다. 열정의 강도가 시간을 쏟는 것에 비례한다면, 물리적인 땀과도 비례할 수 있다면 요즘처럼 해 좋은 날을 골라 달리기를 하고 초록을 찾아다니고 자주 풋살을 하고 건강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먼 미래에는 청춘이라고 기억하게 되겠다는 생각.


크노는 초현실주의 운동을 접고 '잠재문학실험실(올리포 OuLiPo,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이라는 문학실험단체를 만들었다고 했다. 잠재문학실험실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이름을 당분간은 빌려 쓰면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글로 써두는 게 가장 효과적이리라 믿는다.


Meret Oppenheim, Object, 1936


메레 오펜하임의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미술의 상징적인 오브제로, 출품 당시에는 앙드레 브루통이 별칭으로 붙인 <모피 속의 아침 Le Déjeuner en fourrure/Breakfast in Fur>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됐다. 기성품 찻잔세트와 스푼에 털을 붙인 단순한 작품인데 일상 소품을 이질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부드러운 감각을 고스란히 전달할 뿐더러 털이나 머리카락을 입에 잘못 머금었을 때의 그 어색한 느낌, 결을 따라 만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게 좋았다. 내 평범한 하루와 생각들을 남긴 글들이 언젠가 다시 읽어도 어루만지고 싶은 시절을 호출해 내는 이야기들이었으면 좋겠다. 9 3/8" (23.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