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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Oct 17. 2023

명품계곡길을 명품친구들과 거닐다

<산림청 선정 걷기 좋은 명품숲길 1위> 연인산 명품계곡길

가을의 길목에서 세 친구가 다시 만났다. 그것도 서울을 떠나 전원의 고장 가평에서. 가평터미널 앞 커피숍에서 만난 세 친구는 지난봄 호암산을 함산 한 이래 첫 만남이었으니 거의 반년만의 만남이다. 세 친구는 함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등반했고 후지산 정상을 올랐으며 계획이 다소 틀어지기는 하였으나 튀르키에도 함께 여행하기로 한 사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여행과 산행과 모험을 하게 될지 서로 기대가 되는 '명품친구'들이다.


글쎄 "사람에게 과연 명품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느냐?"는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동안 살아온 길이 한결같은 외길이었으며 삶이 치열했으며 잠시 방황은 하였을지언정 방탕하지 않았고 나름 지나온 길에 일가를 이루었다면 명품인생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세 사람이 산행하기로 한 산은 가평 연인산이다. 경기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하면 상판리, 북면 백둔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1068m의 연인산도립공원은 37.691㎢(1,140만 평) 넓이에 해발 1,068m의 천혜의 자연공원이다. 동으로 장수봉, 서로는 우정봉, 남으로 매봉·칼봉이 연인산에서 발원한 용추계곡을 감싸고 있다. 연인산은 연중 강수량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해 여러 종의 고산식물과 얼레지, 은방울, 투구꽃 등 많은 야생화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각 능선마다 원시림과 함께 잣나무, 참나무가 군락으로 자생하고 있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연인산도립공원은 연간 수십만 명의 탐방객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자연환경 체험의 장으로서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연인산도립공원 홈페이지 참조)


연인산은 당초 이름이 없었으나 1999년도에 가평군에서 연인산으로 이름 짓고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산이다. 개인적으로 연인산 인기의 비밀은 네이밍(naming)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산 연인산,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연인산은 원래 가시덤불로 덮여 있던 무명의 산으로 당연히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오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9년 3월 15일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설화의 주인공들과 같이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소망을 기원하기를 바라며 “연인산(1068m)”이라 이름 지어주었던 것이다.


그 설화란 이렇다.


옛날 길수라는 청년이 연인산 속에서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겨울에는 숯을 구워 팔기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길수가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김참판 댁 종으로 있는 소정이었다. 소정은 원래 종은 아니었지만 흉년을 넘기기 위해 쌀을 꾸어다 먹은 게 화근이 되어 김참판댁에서 종처럼 일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길수는 일 년에 서너 번씩 김참판 댁으로 숯을 가지고 오면서 소정을 만나게 되었고 서로 외로운 처지임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 번은 길수가 숯을 가지고 오다가 눈길에 넘어져 김참판 댁에서 병 치료를 하게 되었다.


꼬박 열흘을 누워 있으면서 길수는 어떻게 하든 소정과 혼인하기로 마음먹고는 김참판에게 소정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참판은 길수에게 조 백 가마를 내놓던가 아니면 숯 가마터를 내놓고 이 고장을 떠나 살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삶의 터전을 내줄 수 없어 고민하던 길수는 결국 조 백 가마를 가져오겠노라고 약조를 하고 만다. 하지만 가진 게 없는 길수가 조 백 가마를 마련할 길이 없다.


고민하던 길수는 우연히 연인산 정상 바로 아래에 조를 심을 수 있는 커다란 땅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기쁨에 들뜬 길수는 그곳에서 밤낮으로 밭을 일궈 조를 심을 아홉마지기를 만든다. 아홉 마지기는 조 백가마도 넘게 나오는 아주 넓은 밭이다. 길수가 심은 조는 무럭무럭 자라 이삭이 여물어가기 시작하고 길수와 소정의 꿈도 함께 익어가면서 둘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정을 줄 마음이 없던 김참판은 길수를 역적의 자식이라고 모함을 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친 길수는 더 이상 이곳에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정과 함께 도망가고자 소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소정은 길수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는 소문에 그만 삶의 희망을 잃고 남은 생을 포기한 뒤였다. 소정의 시신을 안고 아홉 마지기로 돌아간 길수는 자신의 희망이었던 조를 불태우며 그 안으로 뛰어든다. 이때 죽었다던 소정이 홀연히 아홉 마지기를 향해 간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보니 두 사람은 간 곳 없고 신발 두 켤레만 놓여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신발이 놓여 있는 자리 주위에는 철쭉나무와 얼레지가 불에 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연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북면 백둔리에서 오르는 길, 조종면 마일리에서 오르는 길, 그리고 가평읍 승안리에서 시작하는 12km의 용추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다. 대표적인 코스가 최단코스인 백둔리코스로 소망능선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이고 두 코스는 5시간 남짓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승안리 코스 즉 용추계곡 방향은 정상까지 다소 길고도 험하기 때문에 왕복 8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중장거리 산행이라고 할 수 있어 출발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승안리 코스의 용추계곡구간이 최근에 명품계곡길 1위로 선정되었다. 산림청(청장 남성현)에서는 국토녹화 5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가꾸어온 산림을 통해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걷기 좋은 명품숲길’을 선정했는데 국민이 제안한 숲길 중 1위로 선정된 '연인산 명품 계곡길'은 계곡과 산림, 사람의 조화가 아름다운 숲길로 선녀탕, 화전민 터, 숯가마 터, 기암괴석 등 역사·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되어 1위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산림과 녹지 그리고 조경 등에 조예가 깊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두 친구들이 이런 명품길을 놓칠 리가 없다. 우리는 당초에 계획했던 백둔리코스를 버리고 승안리코스 즉 연인산 명품계곡길로 발길을 옮겼다.


가평버스터미널에서 차로 불과 15분 정도 이동하면 바로 가평용추계곡 공영주차장이다. 이곳에서 명품계곡길 시점까지는 아스팔트길이 계속되므로 차로 계속 이동하다 보면 차량진입금지 표시가 나오고 마지막 주차장이 나타난다. 이곳에 주차할 자리가 있다면 당신은 럭키 가이. 주차하고 산행, 아니 산행이라기보다는 걷기를 시작한다.


주차장소에서 산행기점까지는 1.5km로 약 30분이 소요된다. 그리고 드디어 명품계곡길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계곡길로 접어들며 심호흡을 해본다. 신선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가슴 깊이 가득 들어찬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런 것이 계곡산행의 묘미가 아닐까?


길은 계곡물을 따라 올라간다. 물소리가 계속 벗을 해주니 심심하지가 않다. 그리고 벌써 가을이 단풍이 되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느낌만은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용추계곡 상류부인 물안골부터 전패고개까지 4.7㎞ 구간의 계곡길에는 가을을 맞아 붉나무, 복자기나무, 생강나무, 단풍나무 등의 수목이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불과 보름 정도 후면 온 계곡이 붉고 노랗게 울긋불긋 불타오를 것이다.


연인산 명품계곡길에는 징검다리가 많다. 모두 열한 개. 징검다리를 세어가며 물을 건너는 재미가 있다.


'용추계곡'으로도 불리는 명품계곡길은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아홉 굽이의 그림 같은 경치를 수놓았다'라는 뜻으로 용추구곡(龍墜九谷)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명품계곡길 안에 자리한  용추구곡은 와룡추·무송암·고실탄·일사대·추월담·권유연·농완계 등 9개의 절경지와 개성적인 이름이 붙여져 있어 하나하나 멋을 음미하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혹시나 이 이름들이 연인산을 작명하며 붙여진 신식이름이 아닌가 했으나 아니었다. 구곡의 이름을 붙인 이는 성재 유중교라는 분이고 글씨는 유근식이라는 분이 바위에 새겨 넣었다고 한다.


제4곡 고슬탄. 푸른 소에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때로는 북소리만큼 우렁차고 때로는 거문고 소리처럼 고요한 모습으로 보인다 하여 고슬탄으로 이름 붙여진 4곡을 지나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대신한다.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에는 밤껍데기를 일일이 벗겨댄 밤과 삶은 고구마가 가득이고 다른 도시락통에는 머루포도와 자몽이 가득가득 담겼다. 거기다가 각종 견과류를 볶아만든 행동식까지 곁들이니 맛도 좋고 배가 든든하다. 세 명이서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하고 산행하는 다른 분들께도 나누어드렸다. 도시락을 싸준 분의 정성에 감사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이날 포근하고 아름다운 용추계곡길에서 나의 관심을 모은 곳은 두 개 정도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곡분교와 화전민 터다. 사전에 별다른 조사 없이 편하게 나선 길이라 막상 산중에서 분교 건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묘했다. 분교 운동장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분교 건물에는 아직도 '방첩 멸공'의 표어자국이 선명한 채 골조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 작은 분교에 과연 몇 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했었을까? "열 명 아니면 스무 명?"

용추계곡길에 위치한 내곡분교 터.


내곡분교는 연인산에 오래전 위치하고 있던 화전민을 위한 학교로 1962년 3월에 개교해서 17년 만인 1979년 3월에 폐교되었다고 한다. 처음 학교가 지어질 때에는 미군들이 제공한 목재와 판재를 이용해서 세워졌으며 나중에는 교육청의 에산과 화전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콘크리트 슬라브를 이용해서 학교가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과거사이지만 미국의 우리나라의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와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계곡산행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드디어 화전민촌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 깊은 산중에 화전민이라고 해야 몇 가구나 살았을까? 아마 열 가구 정도나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먹을 것이라고 해봐야 감자와 옥수수 같은 구황식물이 대부분이었을 것이고, 병이 나도 병의원은 멀어서 쉽게 갈 수도 없고 화전을 일구는 면적도 결코 넓다고 볼 수 없어 많은 인원들이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추측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이곳에 무려 300여 가구의 화전민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당시에 거의 전국 최대의 규모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화전민들은 이곳에서 화전을 가꾸는 것은 물론 숯가마터를 설치해서 숯을 만들어 주요한 수입의 원천으로 삼았고 또 이 수입으로 귀중한 생필품을 사고 학비에 보탰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약초와 잣과 버섯, 도토리 등을 따고 손재주가 있는 분들은 갖바치 일을 하거나 짚신을 꼬으면서 생계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지금도 화전민의 후손들이 인근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화전민터


오래전에는 귀틀집이나 굴참나무껍질로 너와집을 만들어 살았던 화전민들의 모습은 이제 화전민터로만 보전되고 있어 길을 가는 나그네의 상상력을 자꾸만 발동하게 만든다.


발길을 이어 선녀와 무지개소에 이르면 깊이를 알 수 없이 짙푸른 소가 반긴다.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계곡의 물방울이 반석을 타고 흐르며 계곡물이 큰 소를 이루는 이곳은 옛날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노닌 곳으로 전해지며 주변의 반석은 선녀들의 치마를 펼쳐놓은 듯 자리하고 있다.

선녀와 무지개소

선녀와 무지개소까지 이르렀으면 이제 명품계곡길은 끝자락에 와있다고 보면 된다. 하산하는 길에는 올라올 때보지 못한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이날 산행은 왕복 총 13킬로미터 거리에 약 4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여름에 와도 좋았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가을길목의 연인산 용추구곡 명품계곡길 산행. 계곡 못지않게 함께 걸어가고 걸어온 친구들이 있었기에 더욱 뜻깊었던 산행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오랜만에 여러 시간 산행을 했더니 허벅다리도 뻐근하고 배도 고파온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맛있는 백숙을 먹을지 아니면 또 다른 별미를 먹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명품계곡길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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