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를 닮은 글

by 아지

산책을 하다 보면 반려견과 산책을 나온 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작은 강아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게도 그들의 주인과 닮아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다리가 긴 강아지, 귀염상의 강아지, 느긋한 강아지, 깔끔한 강아지, 경계하는 강아지 등등.


글쓰기와 관련된 도서관 수업이 있기에 신청하여 듣게 되었다. 첫날, 강사님의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강의 계획을 듣고, 글쓰기 주제, 독립출판물의 특징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보낸 뒤, 수강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돌아왔다. 이 강의를 선택한 이유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첫 페이지는 어떤 내용을 작성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단순히 글쓰기 수업이라고 생각해 순간,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수강생 중에는 오랜 기간 일을 하고 정년 퇴직하신 뒤 제2의 삶을 계획하신 분, 글쓰기에 관심 있으신 분,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하고 싶으신 분,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계신 분, 평소 시를 즐겨 쓰시는 분 등 다양한 경험과 연륜을 지니신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내 삶의 밀도가 너무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산책길에 만난 반려견과 주인의 이야기로 시작한 뒤 내공이 적어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과 경험, 가족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나를 닮은 글을 만나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강사님께서는 글은 기록의 의미도 있으니, 10대, 20대 등 각 시기별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남겨보는 작업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여 주셨다.


내가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기록'의 의미가 가장 크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기억력도 약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핵심어는 기억나지만 맥락이 술술 나오지 않거나, 반대로 맥락은 둥실둥실 떠오르는데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야기꾼의 한계를 느끼며 나는 기록으로 남겨 많은 이야기를 비축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온 생쥐 프레드릭처럼 말이다. 기나긴 겨울과 같은 나의 중년과 노년을 위해, 계속해서 복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를 바라며.


20대 시절 나는 PD수첩이라고 적힌 손바닥만 한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고 다녔다. 주일 설교 말씀, 그날의 일기, 갑자기 떠오른 단상, 이름 붙여진 감정들을 적어놓았다. 젊은 날의 기록들은 결혼 초 어떤 날의 변심과 미니멀한 삶에 대한 결심으로 버려지면서 없어졌다. 이후 나는 아이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1년에 한 권, 가족 여행을 갔을 때 한 권씩 앨범을 제작했다. 기록과 메모를 좋아하던 나, 이제는 내 삶을 글로 남기는 앨범을 제작해 보고 싶어졌다. 글을 쓰면서 다시 나를, 나의 이야기를 찾고 싶다. 계속 쓰다 보면 잊혔던 과거가 문득 떠오르고, 쉬지 않고 쓰다 보면 현재에 다다르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의 미래까지 살짝 내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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