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도서관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오전 강의를 듣는다. 처음엔 15명 넘게 신청을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리가 생기고 고정멤버 7~8명 정도만 남았다. 그중 강사님의 이전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도 몇 명 있었다.
5월 14일 수요일 오전, 강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수강생과 4명 정도의 낯선 무리가 꽃다발과 커피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오셨다. 이전 수강생들의 깜짝 이벤트였다. 강사님은 뜻밖의 만남에 놀라움과 표현할 수 없는 감동,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순간 당황하시곤, 고마워하셨다. 그리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신나고 힘차게 강의를 하셨다.
그렇지! 수업은 선생이 아니라 학생이 만드는 거지! 똑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어떤 반에서는 꾸역꾸역 진도만 나가는데, 어떤 반에서는 유머와 여유가 버무려지면서 환상적인 수업을 하게 된다. 차이는 단 하나. 받아들이는 학생의 반응이다. 이날 강사님은 이전의 학생들을 보시고 힘이 나셨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현재의 학생인 나는 강사님에게 좋은 수강생은 아닌 것 같다. 늘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날 나는 다 큰 어른 학생들의 이벤트를 보며 15년 정도 된 제자 한 명이 생각났다. 남고에 있을 때 가르쳤던 아이가 교대를 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15년 전의 나는 젊음과 자신감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학생보다도 나에게 더 관심이 많았고, 사명감보다는 내 앞날이 더 시급했던 시기였다. 그 시절의 당당했던 내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학생들에게는 부끄러운 교사였다.
고2 때 만난 제자는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학교에 여러 선생님께 인사하러 왔다. 으레 오는 아이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제자는 내가 학교를 떠난 뒤에도 새해와 명절에 안부 인사를 잊지 않고 내게 연락했다. 내가 주부로 돌아간 시절에도 여전히 나를 선생님으로 대하며 스승의 날에도 연락을 주던 아이였다.
15년 가까이 그 아이와 인연을 이어오며, 제자가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하고,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독서의 분량이 다 찼는지 글을 쓰기 시작해 공모전에 소설을 응모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제자는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작성한 글을 책으로 출판해 내게 선물한 적도 있다.
이 제자를 보며 느끼는 것은 2가지다. 15년 동안 살펴본 바 이 아이의 삶의 구심점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 군대, 연애, 결혼 등의 인생 관문을 지나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을 꾸준히 했다. 코로나 시절에도 온라인 독서 모임을 했을 정도로 독서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두 번째 깨달음은 스승은 제자가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내가 멋지거나 좋은 선생이라서가 아니고, 사람 자체가 본받을 만해서도 아니라 제자의 의지에 의해 내가 그 녀석의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맙고 나를 부끄럽게 만든 어른 같은 제자였다.
시립 도서관에서 수업을 들으며 나는 이번에 내가 그 제자에게 먼저 꽃다발을 보내주며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자가 스승을 만든다.'라는 문구와 함께 꽃다발을 보내고 싶었다. 불행히도 제자가 있는 학교를 알지 못했다. 해당 교육청에 들어가 조회해 보았지만 연락처 전달만 해준다는 민망한 멘트만 봤다. 다음에 연락이 닿으면 근무하는 학교를 알아놔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
2시간 뒤, 제자에게서 스승의 날이라며 전화가 왔다.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꽃다발만 전했다. 제자는 현재 육아 휴직을 썼다고 한다. 아내 되는 이는 일을 시작하고 자신이 아이를 1년간 보기로 했다고 한다. 육아 아빠의 삶은 안 힘드냐고 물으니 다행히 대기하고 있던 어린이집 자리가 나와서 바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며 보낸다고 한다.
하. 부러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