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환대한다.
10년의 육아 기간에 한숨 돌리는 기간이 돌아왔다. 6년 터울의 두 아들을 키우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첫째는 5살 유치원에 보내기 전까지 데리고 키웠지만, 둘째는 더 데리고 있기 힘들어 4살에 보내게 되었다. 형을 보며 익힌 게 있었는지 울지도 않고 어린이집에 잘 갔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보름 정도 지날 무렵부터 여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을 해 보지 않을래? 과외를 해 주지 않을래? 같이 운동 다니지 않을래? 등 잠시 쉬는 나를 가만 두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여러 제안을 했다. 나는 운동도 하고 자유 시간도 가지며 잠시 쉬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공부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마루타 삼아 과외하면 어떻게냐며 내게 말했다. 나는 전공 서적도 다 버렸고, 10년간 책은 쳐다도 안 봤는데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느냐며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 학부모와 선생의 관계가 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기도하고 결정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선 나는 과외는 아니더라도 친구 아들 녀석 공부의 방향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유튜브를 찾아보며 요즘 고입 전형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랜 전 이미 꺼졌다고 생각했던, 재가 되어 이미 날아가버렸다던 교사의 꿈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절, 수업 시간 느꼈던 아이들의 눈빛, 깨달음의 순간 나오던 탄성의 짜릿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고 있는 나, 가르치는 내 모습으로 내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가고 있었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말대로 기도하던 어느 날 아침, 그렇게 눈물이 나더란다. 첫 번째는 어떻게 자신은 자기 아들을 마루타 삼으라고 하였는지, 어떻게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수 있었는지 놀랐다고, 반성했다고 했다. 두 번째는 10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떻게 내가 가정에서 아이를 보며 살 수 있었는지, 4년간 가르치던 일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며 그 마음도 그렇게 쉽게 접을 수 있었는지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때의 자신이 나를 살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나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친구가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마루타가 아닌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도 내용을 바꾸었다고 했다. 내가 다시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너의 기도 응답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내 마음의 재에 불씨가 붙었다고, 다시 공부하고 싶어 졌다고, 그렇게 쳐다도 보기 싫던, 숨 막혔던 임용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과 의지가 생겼다고 말이다. 이것은 내 삶과 성격으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니 네 기도 응답이라고 했다.
그 이후 나는 임용 관련 서적을 구입하고, 인터넷 강의를 수강 신청하고 공부의 길에 접어들었다. 6개월 간의 짧은 공부를 마치고 시험을 봤다.
시험 결과는 불합격이었지만, 나는 너무도 즐겁게 공부했다. 젊었을 때 봐도 몰랐던 내용이 나이 들어 다시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기출문제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고, 인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지혜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 홀로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늘 아이를 옆에 끼고 생활해야 했던, 혼자서는 어디 가보지도 못했던 내가 혼자서 도서관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는 점이 신기했다. 육아 기간이 귀하고 소중했지만, 감옥 같고, 빈 들 같던 삶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내게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는 것은 마치 다시 젊은 시절의 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공부는 정말 신나고 즐거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공부하는 내가 너무 멋지고 뿌듯했다. 그런 빛나는 모습으로 공부를 했다.
1년 더 공부하고, 1년 기간제 교사로 일한 뒤 쉬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일하기에 나의 체력, 지력, 감각은 많이 뒤처짐을 느꼈다. 그래서 쉴 겸 공부할 겸 다시 쉬었는데, 이전처럼 공부하지 못했다. 진득함도 재미도 없었다. 신나기보다 버거웠다. 왜 처음의 마음으로 할 수 없을까, 왜 그때처럼 안 될까 의문만 더해졌다.
그 당시 내 삶을 '떠나간 기차'로 해석했다. 이미 지나간 삶의 정류장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열렬히 공부하던 때로, 힘차게 일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인지하기로 했다.
최근에 초심이 아니라 중심으로 산다는 말을 들었다. 초심의 마음으로 한 바퀴 살면 그 마음에 중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초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중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 중심을 잡고 삶의 반경을 조금씩 넓히며 이전보다 더 큰 원을 그려나가며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 삶의 중심에는 이제 나만 있지 않다. 가족이 있다. 그래서 나는 때론 나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내야 한다. 그렇기에 그때 그 순간의 선택들로 원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 하나의 색깔이 아닌 다채로운 색깔로 덧입혀진 올해의 삶을 나부터 먼저 환대하기로 했다. 나부터 먼저 인정하기고, 즐기기로 했다. 신중하게 선택했고, 최선을 다해 옮긴 행동에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면, 그만큼 나는 내 삶을 지지하고 칭찬할 만한 권리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