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몇 가지 문장으로 소개하라고 한다면,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들이 있겠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을 꼽아보겠다.
포기를 쉽게 하지 않는 꾸준함
꾸준함이라는 것을 기르기가 쉽지 않고, 물론 나도 꾸준하지 않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누가 나한테 하루 5천 원을 줄 테니 매일 가서 테니스를 치라고 하면 일주일도 못 가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과외라는 것은 특별하리만치 적합했다.
과외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아래와 같다.
해외 유학을 가고 싶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해외 생활을 해야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해외 유학은 돈이 많이 든다. 이를 어쩐담?
그런데,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줄 정도의 실력과 뒷받침할 점수가 있다.
고액 알바 중 몸이 가장 덜 힘든 게 과외란다.
홍콩으로 떠나기 전, 과외를 뼈 빠져라 한다면 체류비가 어느 정도 마련되겠다.
옳다구나, 시작해 보자!
그렇게 어디서 어떻게 과외를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 채, 맘카페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강남에서 쌍둥이 남매 영어선생님을 구하는 공고가 있었고,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이 전무하던 내가 용감하게 지원을 했다. 집에서 강남까지 주 3회를 가는 데 교통비만 꽤 나왔지만, 월 이십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감사하게 받으며 아이들 알파벳을 가르쳤다. 그렇게 시작한 첫 과외가, 지금 3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까지의 상쾌한 시작이었다.
키가 내 허벅지까지밖에 안 오던 쌍둥이 남매는 정말 에너지가 넘쳤다. 수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갈 때, 한 번은 여자아이가 쪼르르 뛰어와서 나(정확히는 내 다리)를 폭 안아주었다.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행복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내가 머무는 1시간 30분 동안에 학부모님께 "오늘은 이걸 배웠습니다"라고 할 만한 게 있게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중학생 대면 과외를 거쳐 고등학생들도 가르쳐보고, 화상 과외도 해봤다. 그렇게 10번 이상 학생들을 만나 보니,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건 고등학생 수학과외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과정도 이야기가 꽤 길다. 5년 간 과외를 쉬지 않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상대한 만큼 많은 일도 있었다.
저녁으로 마파두부를 만들었는데, 더 많이 만들 걸 배가 고프다. 야식으로 먹을 걸 정한 후에 계속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