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응급실을 가다 - 4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 감사해야 함을 잊지 말 것

by 구아바초코송이

수술이 잘 끝나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보통 심적으로 부담이 덜어지면 몸이 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가? 어디라도 떠나고 싶고,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말이다. 하지만 온몸이 쑤시다 보니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대신 마음만은 가벼운 괴리가 있었다.


사실 이 수술을 하기 전 굉장히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홍콩 금융권 대기업에서 인턴임이 무색하게 업무가 아주 많았고, 업무가 잘 맞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쉼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구아바 씨, 이 프로젝트도 좀 맡아줄 수 있겠어요?


그럴 때마다 망설임 없이 다 받아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회사 최종면접 준비까지 겹친 상태였다. 물론, 과외도 쉬지 않으면서. 그렇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디도 가지 못하며,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일상에서 강제로 차단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상이 180도 바뀐 셈이다.


안 그래도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 생각밖에는 할 수 없는 외로운 병실에 앉아있자니 참 별 생각이 다 들더라.


내 상사가 나를 얼마나 인정할지,

내년에는 어떤 회사에 지원을 해야 할지,

당장 오늘은 뭘 먹는 게 좋을지,

갖고 싶은 그 옷의 세일 기간이 끝났는데 언제 또 살지,

그런 게 허망하리만치 의미가 없어졌다.

일단 몸이 따라줘야 뭐라도 하니까.



해외에서 아프면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고들 한다. 곁을 함께해 준 남자친구와 틈틈이 연락해 상황을 물어봐주는 친구들과 가족들 덕에 그 말은 다행히도 공감이 가지 않더라.


끝없는 대기, 수술, 회복기간을 지나다 보니 단계 단계가 잘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되고, 크고 작은 걱정들이 사실 많이 잊혔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걱정이라는 건 참 상대적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지금 가진 크고 작은 걱정들이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한없이 하찮은 투정일 것이며, 언론에서 다뤄 유명해지고 시간이 지나 관심이 없어진 기나긴 전쟁을 지내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이다.


차가운 병실에 누워 며칠을 굶자니 밖을 멀쩡히 걸어 다니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 입장이 다시 되고 보니 감사하기보다는 또 새로운 불만들이 생기는 것이다.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심천에서 먹은 한식당 냉면. 홍콩에 있는 그 어떤 한식당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먹은 냉면다운 냉면이었다.
작가의 이전글홍콩에서 응급실을 가보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