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응급실을 가보다 - 3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충수염 수술하기

by 구아바초코송이

수술병동에서의 밤이 지나고, 그다음 날도 역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다가도, 기다림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떨림은 없어지고 답답함이 되기 마련이다. 내게 놓인 휴대폰 속 각종 SNS와 다운로드하여 읽고 있었던 책 한 권이 없었다면 입원실 천장 구석에 달려있는 홍콩 티브이 채널들을 보면서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수술을 진짜 하게 될지 말지도 모른 채, 간호사가 CT스캔을 하러 가자고 했다. 이쯤 되니 뭘 하자고 간호사나 누군가 부를 때마다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어쨌든 끝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는 것이니까.


CT스캔을 위해 자리에 누웠다. 도와주시는 간호사분들이 이미 나의 복부 통증을 알고 있기에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그 여린 손과 팔로 받쳐주었다 (홍콩의 여자들은 대개 체구가 작고 말랐다.). 중간에 조영제를 혈관을 통해 주입하는데, 간호사가 온몸이 따뜻한 기분이 들 거라고 말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온몸이 갑자기 뜨끈해지는데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고, 무슨 온천에 몸을 담근 듯한 기분 좋은 따뜻함이 아닌 혈관을 타고 서서히 몸에 열기가 전해지는 불쾌함이었다. 그렇게 숨을 여러 번 참았다 뱉었다를 반복하니 CT스캔도 끝이 났다. 다행히 나의 수술 여부와 정확한 진단을 위한 가장 마지막 검사였다.


어느덧 정들어버린 12번 베드에 누워서 명상 아닌 명상을 하던 중, 이미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30대 초반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가 - 그것도 세 명이 - 찾아왔다. 전부 다른 질문과 테스트를 했다. 아주 상세하게. 그렇게 마지막으로 찾아온 하이톤 목소리의 의사가 말했다.


충수염에 걸린 게 맞는데,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계속 링거를 맞으며 자연적으로 염증이 사라지게 하는 게 하나. 미니 수술을 통해 감염된 부위를 도려내는 게 하나.


그렇게 한참을 질문을 하면 할수록 수술을 권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치유의 방법은 적어도 1~2주는 입원을 해서 경과를 살펴야 하는데, 수술을 하면 하루 이틀이면 회복을 하고 그 후에는 상처가 아무는 데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성격이 다소 급해 보이지만 싹싹한 의사는 빨리 수술 결정에 대한 "예스"를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스치는 세 가지의 생각이 수술을 결정하게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통증과 무한 대기 루프를 끊고 싶다.
최대한 빨리 업무에 복귀하고 싶다.
염증난 부위를 잘라내면 재발의 위험은 없겠지.


그렇게 수술이 결정되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 간호사에게 몇 시간마다 도대체 내 수술은 언제 하는 거냐고 묻느라 반나절이 지났다. 그렇게 밤 12시쯤 잠이 들었다. 숙면을 위해 남자친구 C군에게 부탁해 전달받은 향기 나는 온열 안대 (일본산이다. 레몬향이 솔솔 나면서 따뜻해진다.)를 쓰고 금방 잠이 들었다. 온열 안대는 20분 정도 온기가 지속되는데, 아직 온기가 한참 남은 상태에서 갑자기 누군가 나를 깨웠다.


수술 가야 돼요.

안대를 벗으며 "지금요?"라고 긴장감 하나 없이 말하는 내가 웃겼는지 간호사가 피식 웃으며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보라색 가운을 주었다. 그렇게 달그락거리는 간이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가는데 그렇게 크지 않은 수술인 걸 알지만 가족 하나 없는 홍콩에서 나 혼자 수술을 하자니 무섭다기보다는 이 상황이 신기했다.


그렇게 내 몸을 맡길 여의사의 얼굴을 보고, 마취과정에 대해 들었다. 수술실 바로 앞에서 대기를 20분가량 하다가 (그 20분은 세상에서 가장 긴 20분이었을 것이다) 자동문이 열리자 큼지막하고 깨끗한 수술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의사만 5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마취과 의사가 너무 나긋나긋해서 긴장은 거의 되지 않았다. 조금 추울 뿐이었다. 그렇게 마취액이 삽입되고 3초 만에 산소마스크를 낀 채로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이미 수술이 끝나 있었다. 배가 너무 아리면서 아팠는데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수술이 잘 끝났고,
출혈도 없었고,
감염된 부위가 잘 잘려나갔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기쁜 마음과는 상반되는 통증이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주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은 죽만 먹다가, 드디어 정상적인 밥을 먹게 되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수술 후 먹었던 죽. 마냥 흰 죽은 아니고 나름 작은 닭고기 조각들도 들어있고 간도 되어 있다. 3일을 넘게 물도 못 마시고 굶은 상태로 먹는 첫입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잠깐 허리 스트레칭을 하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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