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수

이제는 져버린

by 미지수

1. 그런 아이

학교를 다니는 미지수들이라면 매 해마다 돌아오는 것들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나에겐 그중 하나가 학급의 대표인 반장과, 그 대표를 돕는 부반장이었다.

한 번은 나도 반장이란 수식어를 달았으면 싶었던 때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상상 속에선 스스로가 반장이 되어도 좋았고, 부반장이 되어도 좋았다. 그리하여 어렸던 초등학생의 미지수는 선생님의 '반장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에 스스로 손을 올렸고, 아이들이 3~4명 정도 몰렸던 그 투표에서 0표를 기록하며 인생 최대의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어렸던 미지수가 반장 투표에서 자기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은 건 '자기 자신을 투표하는 건 양심에 어긋난다'는 선생님이 내린 신념의 결과였으며 어린 미지수는 그 신념에 따라 움직인 결과로 수치심을 얻게 되었다. 그 신념이 뭐라고, 그깟 양심이 뭐라고. 어린 미지수는 반장, 부반장이라는 수식어 대신 0표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미지수는 그런 아이였다.

반 안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없고, 조용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런 아이. 반장 부반장 투표에서도 양심을 지나치게 지킨 나머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그런 아이. 0표라는 사실에는 굴하지 않았으나, 아이들의 시선과 키득거림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다시는 투표에 나가지 않겠다 다짐하던 그런 아이.


2. 저런 애

어린 미지수가 자라고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 '저런 애'로 변해있었다. 쟤는 원래 저런 애야, 쟤는 원래 좀 이상하잖아, 같은 말들이 미지수를 대신해 주는 말들이 되었고 그건 어느새 '미지수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지만 제일 잘 맞다고 알려진 수식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 미지수는 생각했다. 내가 못나서,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나는 동생처럼 전교 1등도 아니고, 친구처럼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오지도 못하는 '저런 애'니까.

고등학생이 된 미지수는 이제 알았다.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세상은 그 노력을 알아줄지언정, 가족들은 그런 노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걸. 미지수는 더 이상 어린 미지수가,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수가 아니었다. 세상에게 상처받고 가족에게 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런 어른이었다. 어리고 여린 어른이었다.

고등학생의 미지수는 저런 애였다. 공부도 못하면서 나대는 저런 애, 특이하고 이상한 저런 애, 제 앞가림도 못하고 멍청해 빠진 저런 애. 그럼에도 잘하고 싶은 게 있어 아등바등 노력하며 살아가는 저런 애.


3. 이런 사람

이런 나에게도 꿈은 있었다. 반장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멋진 수식어를 거며 쥐는 꿈, 대회에 나가 1등을 해 단상에서 상을 받는 꿈, 학교 시험에서 1등을 해 부모님께 칭찬받는 꿈, 가족들에게 '미지수는 좋은 애야'라는 말을 듣는 꿈.

그러나 어린 미지수는 몰랐다. 자신이 반장투표에서 0표를 가질 거란 걸, 대회에 나갔지만 1등은커녕 똑같은 자리였단 걸, 학교 시험에서 겨우 20등을 해 오히려 격려를 받았다는 걸, 가족들에게 '미지수는 좀...'이라는 꺼림을 받는다는 걸.

어려서 받은 0표는 잔인했고, 똑같은 자리는 낭떠러지였으며 20등을 해 받은 격려는 소름 끼치도록 아팠다. 가족들에게 받은 꺼림은 커다란 웅덩이가 되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럼에도 미지수는 멈추지 않았다. 거북이보다 느리고 달팽이보다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미지수는 이런 사람이었다. 상처받고 다치고 아파도 혼자 힘으로 꿰어내서 결국엔 무언가를 얻어내는 사람. 그게 비록 아픔과 웅덩이일지라도, 결국엔 얻고야 마는 미지수는 이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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