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뉴스거리로 접근?

바꾸자 제발 (1)

by 가을하늘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재난방송은 이 대목에서 뉴스와 확연히 구별된다. 재난방송은 개가 사람을 물 위험이 있을 때, 그 위험에 대해 ‘개가 주로 언제 어디서 사람을 물고, 어떤 피해가 날 수 있는지, 개가 물려고 할 때 사람은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물린 뒤에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요령을 알려주는’ 방송이다.

‘뉴스업자’들은 모든 걸 볼 때 ‘뉴스가 될 만한지’를 따진다. 사람이 개를 물 정도로 특이성과 새로움이 있어야 뉴스로 취급하려 한다. 이에 반해 재난방송은 이런 ‘뉴스 밸류’를 따지기보다,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어떤 위험이든 그 위험을 어떻게 하면 예방, 대비, 대응할 수 있는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즉 ‘리스크 밸류’, ‘안전 정보 밸류’를 따져야 한다.

지금껏 재난방송은 주로 뉴스를 만드는 기자들이 맡아왔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재난을 대할 때 배운 대로, 관행대로 ‘뉴스거리’로 대한다. 재난 발생 시 “이게 뉴스가 되느냐”를 따지고, 재난방송을 할 때 ‘보도’하듯 한다.

뉴스 밸류가 높으려면 ‘누가 어디서 죽었다’라는 정도로는 안 되고, 죽어도 ‘떼죽음’을 죽어야 한다. 떼죽음이 있는 대형사고가 아니라 날마다 발생하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소형사고는 뉴스로 취급하려 하지 않는 게 기자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날마다 발생하는 ‘소형사고’ 피해자들의 누적된 수가 ‘대형사고’로 인해 일시에 발생하는 피해자들 수보다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소형사고가 매일 거듭되는 현실은 그 자체가 사실상 ‘초대형사고’나 마찬가지'라고 김훈 작가가 말했다. 교통사고로 한 해 사망하는 사람만 2,500명이 넘는다. 산재 사고로 한 해 6~7백 명이 사망한다. 그런데도 한날한시에 한 곳에서 죽지 않았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겨도 되는 걸까.

이런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무얼 미리 준비해야 할지, 무슨 예방조치가 필요한지, 필요한 정보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 재난방송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했던 얘기 또 하는 걸' 꺼린다.

또 한편으로 뉴스거리가 안 되는 소형사고를 굳이 뉴스거리가 되도록 만들어 전하기도 한다. 사건을 ‘극화’ 하기 위해 보도에 조미료를 친다. 시청률 상승을 기대하며 영상의 일부를 도드라지게 하기도 하고, ‘단독’으로 포장할 수 있도록 팩트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단독이나 특종, 시청률 등에 목마른 뉴스 공급자의 눈에 ‘재난’이나 ‘사고’는 매우 요긴한 소재로 다가온다. 이런 극화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한두 번 이뤄내다 보면, 관행이 공식이 되고 노하우가 된다.

시청자들은 뉴스 수요자로서 대형 재난과 사고, 또는 ‘극화’된 재난 보도에 끌리게 된다. 나와 내 가족이 겪는 일만 아니면 불구경, 물구경, 고통 구경은 시선을 뺏기에 충분한 볼거리이다. 구경하며 자기도 모르게 재난이 주는 몰입감을 ‘즐기게’ 된다.

시선을 끌기 좋은 뉴스에 비해, 재난방송 콘텐츠들은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극화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지만, 양념 안 한 생고기처럼 맛이 없다. 주목도가 떨어진다. 어느새 뉴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서 외면받기 십상이다. 본래의 취지는 힘을 잃고 만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기자들은 재난을 ‘뉴스거리’의 관점에서 취급하고, 뉴스 밸류를 따지고, ‘시선 끌기 좋게’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저널리즘인가? 시청자를 위한 유익한 서비스인가? 재난을 뉴스거리로, 볼거리를 만들려고 접근하다 보면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정작 저널리즘도, 시청자를 위한 유익한 서비스도 놓치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