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자 제발 (2)
한때 KBS 내부에선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다.
"공영방송이 왜 재난방송주관사라는 법적 의무를 떠안아야 하나…"
공영방송사는 KTV 같은 국영방송사가 아니므로 무조건 정부가 하라고 하면 따르는 조직은 아니지 않느냐는 거다. 한술 더 떠 ‘재난방송을 해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요청하는 건 취재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정부의 간섭 아닌가’라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누가 저런 말을 하는가. 참 안이한 발상이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재난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재난방송주관방송사’에게 정보를 달라는 국민적 요구, 시청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정부의 간섭 운운 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재난방송을 적극 해야 할 판이다. 국민들이 주는 수신료를 꼬박꼬박 받아먹는 공영방송이자 법이 정한 재난방송주관사 아닌가.
재난이 많아지고, 재난정보에 대한 시청자들의 수요가 높은 상황을 주목한 MBC나 YTN 등 KBS를 제외한 다른 방송국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재난방송을 하는 날도 있다. 시청률이 급등하기도 하고, 방송사 재허가나 평가에 재난방송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KBS를 제외한 여타 방송사들은 KBS에 비해 여건이 열악하다. 전국적인 취재 네트워크를 KBS만큼 가지고 있지 못하고, 광고 계약 시간 등의 제약으로 재난방송을 무한정 열심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KBS는 (1 TV의 경우) 광고로부터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인적, 물적 여건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재난방송주관방송사’로서의 권한, 의무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
내부의 고민이 없진 않다. 아무 걱정도 없이 오로지 재난방송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될 만큼 고정적 수입(수신료)이 넉넉지는 않은 현실 때문에, 공영방송도 타 민영 방송사와 경쟁하며 돈을 벌 생각을 해야 한다. 돈을 벌려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 많이 편성된, '많이 보는 채널'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재난 콘텐츠'를 무작정 많이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KBS도 타사처럼 시청률 대박을 노린 드라마도 만들어야 하고, 예능프로도 만들어야 한다.
간혹 큰 재난이 닥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 재난방송 시청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긴 하지만, 그건 일 년에 한두 번일 뿐이고, 나머지 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날에는 예방과 대비를 위한 콘텐츠 따위를 아무리 열심히 만든다 해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 보다 높긴 어렵다.
어찌하면 KBS는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시청률 전쟁을 포기할까? 아님 재난방송은 적당히만 하고 돈 버는데 매진할까?
현재로선 둘 다 불가능하다. KBS는 법이 요구한 재난방송주관사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시청률도 잘 나오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게 현재의 요구이다. 모순적인 요구 아닌가? 그럼에도 당장은 이걸 해내길 요구받고 있다. KBS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