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 정채경

by 수인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 정채경


TV는 오늘도 살생의 추억으로 시끄럽다


나는 밥상 앞에 앉아 갈치조림을 먹는다

녹조 현상으로 물고기가 은빛 뱃가죽을 드러내고

푸른 들녘에 뿌려대는 살충제로 꿈틀대던 벌레들이 굳어 갈 때

저 너무 세계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자살 테러를 감행한다


차를 마신다는 구덩이를 파고

오리 떼를 쏟아붓는다 포클레인의 거대한 손이

불가항력으로 거대한 무덤을 만들 때

살갗의 땀구멍마다 소름이 돋아 오싹한 양팔을 문지른다

오리들이 무덤 속에서 빠져나오며 필사적으로 뒤뚱거린다

살처분했던 오리들의 울음소리가 땅속에 고여

메아리칠 때 전화벨이 울린다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요즈음 왜 이리 조용하다냐?

TV 속 예멘의 8살 소녀가 40대 남자와 결혼을 했다

가난한 집 9명의 식구를 책임지기 위해 지참금을 받고

호랑이 굴속으로 던져졌다 어린 소녀는

다음 날 심한 장기 손상과 출혈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별일 없냐?

-응, 별일 없이 잘 지내!


정채경 시집.jpg

정채경 시인의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시집이 도착했다. 책장을 펴서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란 시를 펼쳐 읽는다. 표면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지만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TV 속은 살생으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나는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밥상 앞에 앉아 갈치조림’을 먹지만 그것이 먹는 행위일 수가 없다. 죽어가는 물고기, 살처분되는 오리 떼, 장기 손상과 출혈로 죽음을 맞이한 예멘의 8살 소녀, 온통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뿐이다.


친정 엄마의 별일 없냐는 물음에 별일 없다고 말하지만, 결코 별일 없지 않는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찌 시인 뿐이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희로애락 애오욕의 칠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에 휘둘리고 있다. 세상은 절대로 우리가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알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게 평정심에 이르고 싶은 것이 어디 혼자만의 꿈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