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외톨이처럼』시집
박노식 시인의 『시인은 외톨이처럼』시집에서 「겨울 산」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나를 보기에 겨울 산을 불러내 봅니다.
겨울 산 / 박노식
백지 한 장 머리맡에 누이고
시를 얻어 잠이 들었다
꿈결에 여러 번 손이 가고 뒤척였지만
아침 마당에 나와 먼 산을 둘러보다 울컥하여 다시 방에 들었다
죽은 말을 솎고 또 몇은 비틀어서 여기저기 걸어놓았다
검은 종이를 들어 터니
깨알 같은 글자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어제의 시가
방금 둘러본 겨울 산같이 휑하고 가벼워져서
나의 얼굴마저 갸름해졌다
「시인은 외톨이처럼」이란 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시인이 아직 한천에서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외톨이가 되었”는지 어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겨울 산을 마주하고 있을 것은 분명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시인이 시를 쓰겠다고 시에 미쳐서 분필을 놓아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극히 현실에 젖어 사는 나는 시인의 마음을 놓쳐버렸더랬다. 시인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이런 내가 시를 쓰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몇 장의 손편지를 보낸 사람도 있었으니까. 두고두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시인은 밤이 새도록 시를 쓰고 다듬어 시 한 편을 얻었을 것이고, 꿈결에도 만족스러운 시를 짓기 위해 퇴고를 하느라 뒤척였다. 시인은 “아침 마당에 나와 먼 산을 둘러보다”가 시란 무릇 겨울 산과 같아야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그 많던 낙엽이 지고 헐벗은 나목들만 품고 있는 겨울 산을 보며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제는 수많은 나뭇잎을 달고 있었던 시에서 낙엽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겨울 산처럼 만들었다. 시인의 “얼굴마저 갸름해”지는 꼭 필요한 시어만이 남게 되었다고, 시 쓰는 법을 시 한 편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얻는 일이란 시를 쓰는 일처럼 버리고 또 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겨울 산의 나목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