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한 말 / 오선덕

『만약에라는 말』

by 수인


오선덕 선생님께서 『만약에라는 말』 시집을 발간하여 보내주셨다.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선생님의 시 「닿지 못한 말」을 소개한다.




닿지 못한 말


오선덕


당신의 눈길 속에서 걷고 싶었다


어느 봄날 당신의 눈에선

붉은 석류알 닮은 울음이 흘러내렸다


마주 서 있기 미안해 물구나무를 섰다

저만치 걸어가는 닳은 신발이 보였다


이유가 내게 있음을 알았을 때

변명의 내용은 수시로 바뀌었다

벨 소리를 듣지 못했어 강의 중이야 샤워 중이었어 배터리가 없었나 봐……


줄줄이 이어지는 뻔한 말들은

당신에게 닿지 못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늘어날 때마다

무수한 변명이 가로수처럼 늘어선

그 길, 점점 희미해졌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눈길 속에서 살아가기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화자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신의 눈길을 받으면서 당신의 따스한 눈길을 받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화자를 거부하는 당신 때문에 “마주 서 있기 미안해 물구나무를 섰다”라는 말이 뼈아프다.


그 모든 이유가 화자에게 있다고 자책하는 선한 마음이 읽힌다. 수시로 바뀌는 당신의 변명이 얼마나 뻔한 말인 줄 알면서도 당신의 눈길 속에서 살고 싶은데 “당신에게 닿지 못”하는 말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우리 모두 닿지 못한 말을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무수한 변명이 가로수처럼 늘어선” 닿지 못한 말을 무수히 겪으며 살아온 우리들의 삶 속에 “그 길, 점점 희미해졌다”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반어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결코 희미해질 수 없는 그 닿지 못한 말은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가슴속에 꾹꾹 박혀있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당신의 눈길 속에서” 걸을 수 있을까. 만약에 간절한 한마디 말, 진심으로 닿을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은 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치유받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삶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