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교수님의『풍경』이란 시조집을 읽으며
풍경 1
한실 마을 배꼽쯤에 꿈틀대는 애벌레가
아침노을 들쑤시며 논둑을 기고 있다.
고적한 이른 들판에 어둠마저 흐르는
물안개 요염하게 피어오른 샘가에서
땀 내 찌든 또와리를 게워내는 아낙네
발걸음 느리게 떼는 꿈결 같은 여운 인다
아득한 수난사가 솟아나는 길목까지
긴 한숨 교차점의 줄임표를 뒤집던 날
한숨이 새어나오는 입은 새벽달도 지워졌다
풍경 2
천형처럼 지워진 양촌 댁이라는 택호가
그녀의 모서리를 끌어안고 들어왔다
봄날의 옥빛 하늘이 유난히도 푸르던 날
울음 섞인 바람이 제 안의 각을 부수고
연락 끊긴 전화가 다시금 울릴 때면
타래박 한통 가득히 일렁이는 젊은 여자
가난 속에 숨겨졌던 꿈과 기억 봉긋 댄다
노을이 스민 지난날을 욱여넣고 삭히는
지나온 구십 세월이 촛불처럼 깜박이던 날
풍경이란 시다. 시인의 어머니 택호가 양촌 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택호는 천형처럼 짊어진 십자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천형이란 단어를 짚어보면 그것은 하늘이 내린 벌이다. 얼마나 힘겹고 고단하지. 떼어 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란 이름은 천형이다. 우리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맨 먼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서정적인 어머니일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한실 마을 배꼽쯤에 꿈틀대는 애벌레’로 표현하고 있다. 아침부터 어둠이 내리는 저녁까지 논둑과 들판을 기어 다닌다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머니의 수난사가 솟아나는 길목을 떠올리면 시인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어머니의 삶이 결코 녹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한 개인의 삶을 고난이나 재난을 당한 역사로 표현할 정도라면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온 구십 세월이 촛불처럼 깜박이던 날”은 어떤 날일까. 셋째 수의 종장으로 보아서 구순이 넘는 어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던 어느 날을 불러들인 듯하다. 아마도 어머니와 따로 사는 데 연락이 되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어머니에게도 꿈과 희망에 부풀었던 젊은 날이 있었을 것임에도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란 이름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을 생을 촛불처럼 깜박이면서 보내고 계시는 어머니란 이름을 불러놓고 보니, 어머니의 생이 천형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누군가는 작가의 길이 천형이라고 했다. 그러니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에게 어머니 역시 시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어머니이지만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불러내어 위로해주고 안위를 기도해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