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승 시인님의 『스노우볼』에서 「헌신짝」을 읽어봅니다.
헌신짝/ 노수승
간혹, 신발이 촉수를 꺼내 바다 속 바위를 더듬는 꿈을 꾼다 촉수 있던 자리를 벌름거리면 발바닥이 간지럽다
신발은 4억 년 동안 발의 평안을 위해 모든 기관이 퇴화되고 각피만 남은 실루리아기 해양생물의 변종, 인류와 오랫동안 공생해 온 조개에 대한 얘기다
조개가 발 모양으로 서서히 변하여 각질은 질김과 탄력으로 발을 영접한다 그들에게 해저의 기억은 오직 어디로든 이동하고 있다는 것
가는 곳엔 어디나 발자국 남긴다
길 위엔 언제나 뜨겁게 달라붙은 염분이 있다 무관심의 시간을 달래며 자신을 한 올씩 버려야 했던,
헌신짝은 버려진다
바다로부터 시작된 삶이 바다로 떠내려간다 폐선을 가라앉을 듯 메고 가는 것은 그의 터전이었을 물의 이웃,
한 사람의 발걸음을 돌보던 역부가 요람으로 돌아간다
상갓집 모닥불이 강변에 번진다
우리 모두는 이승이라는 곳에 사는 역부인지도 모른다. 역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공사장에서 품삯을 받고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헌신짝은 그 역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를 대변하고 있는 상징이다.
시인은 “신발은 4억 년 동안 발의 평안을 위해 모든 기관이 퇴화되고 각피만 남은 실루리아기 해양생물의 변종, 인류와 오랫동안 공생해 온 조개”라고 말하고 있다. 문득 신안에 있는 세계조개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수만 가지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조개들이 와락 달려든다. 그 조개가 인류와 함께 공존해 오다 변종을 거쳐 신발이 되었다고 한다.
그 증거로 촉수가 있던 자리를 발름거리면 발바닥이 간지럽고, 역부의 발자국에는 염분을 남긴다고 한다. 발바닥에 땀이 나 간지러울 정도로 고단한 생을 살아가야 하는 일은 쉬운 삶이 아니다. 사는 일이란 새신이 헌신짝이 되도록 뛰어야 하는 일이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승의 삶은 고달프다. 역부로 살아온 그 삶을 버리고 처음 왔던 근원으로 돌아가는 일. 요람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헌신짝으로 버려지는 길 뿐이다. 그 신발이 4억 년 전의 요람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조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돌아가는 저승도 아름다울 수 있을지는 정녕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