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오늘은 유진 시인님의 『척』이란 시집에서 「가면假面」을 소개합니다.
가면假面/ 유진
오래 병을 앓았다.
꽃 같은 이름표를 달고
이름에 걸맞는 얼굴을 쓰고
이름값만큼의 병을 앓았다
만들어 쓴 얼굴로
만들어 쓴 얼굴들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맴돌았다
같은 방향 혹은 다른 방향으로
시간을 깁는 소용돌이 속에
손목에 채워진 어제는 바꿔 끼울 수 없고
남겨진 길목마다
핑계를 버리고 왔을지도 모를
내가 또렷이 남아 있는
여기까지
가면이란 단어는 연극이나 춤 또는 놀이에서 얼굴을 감추거나 다르게 보이려고 얼굴에 쓰는 것이다. 그 가면을 그리스인들은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독일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페르소나를 인간의 외적 인격이라고 했다.
외적 인격이란 누가 나를 부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노자의 도덕경 제1장에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 나오는데 이름이란 그 사물의 실제가 아니라 그 사물의 가리키기 위해 임시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가면으로 산다고 하여 너무 자책할 일도 아닐 것이다.
사회적 역할의 내가 다르고, 가정에서의 내가 다르듯이 그 역할에 따라 이름이 불려질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유독 체면을 생각하는 사회라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시적 화자인 나는 “오랜 병을 앓았다”라고 하듯이 페르소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았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있다. “꽃 같은 이름표를 달고/ 이름에 걸맞은 얼굴을 쓰고/ 이름값만큼의 병을 앓았다”라고 한다. 아마도 시인에게 “이름값만큼의 병”이 혹독한 시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만들어 쓴 얼굴로/ 만들어 쓴 얼굴들과”체면치레를 위해 살아온 사회적 역할, 규범, 의무 이런 것들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수단이다. 그 수단에 치우치게 되면 “이름값만큼의 병을” 앓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내가 또렷이 남아 있는/ 여기까지”라고 끝을 맺고 있다. 가면假面을 쓰고 살았지만 다행히 수단에 휘둘리지 않은 듯하다. 독자들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며 잘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