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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Feb 21. 2024

봄 교실 / 남대희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


남대희 시인의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에서 “봄 교실”이란 시를  올립니다. 

    

봄 교실 / 남대희    


비 그치고

산기슭이 봄을 꺼내 들었다

아직, 물기 뚝뚝 흐르는 파릇한 새봄이다     


햇살에 허공이 파랑을 내고

바람결에 목련은

교복 같은 미소를 올망졸망 피웠다    

 

지난가을 가슴 열고

하늘을 품었던 왕버들의 팔뚝이

연둣빛으로 울컥거린다    

 

그냥 보내는 세월은 없다

가슴 열지 않았다면

저 푸른 별빛, 저 맑은 허공을 품지 못했다면

눈부신 연둣빛 속살 어찌 얻었으랴    

 

비 그치고

호수가 올챙이 앞다리를 까맣게 키우는

향기마다 빛 고우 촉촉한 새봄이다    


                               


봄비 오는 소리에 봄이 시작된다. 우수가 지나고 매화와 산수유 꽃잎이 눈을 띄웠다는 소식이 간지럽게 들려온다. 비 그치고 산천은 봄내음을 사람의 마을로 흘려보낸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오감이 먼저 알고 봄을 탐하러 나선다.     


화자는 능청스럽게 ‘산기슭이 봄을 꺼내 들었다’라고 마술 부리듯 뚝뚝 새봄을 내놓는다. 그 꺼낸 것들을 “봄 교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봄은 파릇하고, 목련은 올망졸망 미소를 피워내고 있다. ‘교복 같은 미소’다. 샤랄랄라 노랫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경쾌함이 묻어난다.    

 

봄은 이 날이 오기를 오래 기다렸다. 지난가을부터 하늘을 품었다. ‘왕버들의 팔뚝이 연둣빛으로 울컥’거린다는 것은 봄을 기다렸던 이들에게 감격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어낸 오랜 노고에 마음을 열어 기다렸노라는 응수다.     


봄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푸른 별빛과 맑은 허공을 품어 가슴을 열었기에 ‘연둣빛 속살’을 얻은 것이다. 어디 그 속살뿐이랴. 이 세상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낼 수 없다. “봄 교실”처럼 더불어 가슴을 열고 품어야만 피가 흐르듯 세상은 따스해지는 봄이 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호수가 올챙이 앞다리를 까맣게 키우’듯이 이 비 그치면 “봄 교실”의 촉촉한 양분을 먹고 인간사 고단함도 자연과 더불어 희망차게 시작하리라. 새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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