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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틀, 소라팝

그리고 소라게

by 시트러스

1. 뜻밖의 낚시왕

“엄마, 이거 움직여요.”

욕실 바닥, 모래를 턴 조개껍질 사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바닷가에 '애완돌'을 주우러 간 날, 우리는 뜻밖의 생명을 데려왔다.

아이들이 줍고, 엄마가 털어낸 조개껍질 속 인연.

그렇게 시작됐다. 마이리틀과 소라팝.

소라게와 함께한, 일주일간의 짧고 깊은 이야기.


2. 비 오는 날은 역시 바다지

비 구름이 몰려들었던 아침과 달리, 을왕리 바닷가는 강한 햇살이 쏟아졌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저마다 채집통을 매고서 돌을 줍기로 했다.

11살 원희가 학교에서 애완돌 꾸미기 시간이 있다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언니가 하는 건 뭐든 다 좋아 보이는 7살 쌍둥이 두희, 세희도 질세라 바닷가 돌 수집에 나섰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바닷가라니...’ 집순이인 나는 가는 동안 동태눈으로 석탄빛 구름이 깔린 하늘 구경만 실컷 했다. 하지만 역마살 신이 돕는 게 분명한 남편은 “아이고, 비가 그쳤네. 바다 구경하자.” 신이 났다.


3. 모래 위의 신난 자들

채집통을 장착한 어린이들과 평소의 3분의 1 크기로 눈을 뜬 엄마도 곧 뒤를 따랐다.

‘윽’ 바닷가로 들어서자마자 모래들이 발바닥을 찔러왔다.

“발바닥 안 따갑니?” 옆을 보고 말을 걸었는데, 다른 집 아이가 놀라서 쳐다봤다.

“어, 안녕? 발... 괜찮지?” 바닷게처럼 사삭 옆으로 걸어,

그 사이 우리 집 아이들이 어디로 갔나 찾았다.

손날을 들어 햇빛을 가려 보니, 어느새 저만치 간 아이 셋이 옹기종기 모래를 파고 있었다.

남편은? 아.. 신나게 파도와 달리기 하고 있는 저 사람이구나.


큰 우산을 팡 펴서 파라솔 삼았다. 바닷물이 밀려드니 발바닥 모래가 씻겨 나가는 것이 반복되었다.

버석한 존재감을 느끼며 아이들과 성인 한 명이 신난 바닷가를 구경했다.

작은 돌들과 소라, 조개껍질로 어느 정도 채집통이 차자, 햇살이 꽤 따가워졌다.

수돗가에서 손발을 잘 닦고, 그토록 기다리던 식당과 커피숍을 차례로 돌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변은 집으로 돌아와 일어났다.


4. 움직이는 껍질

아이들이 씻고 있는 욕조 밖에 조개껍질과 돌들을 놔주었다.

“엄마, 소라 껍질이 움직여요.”

“아, 물 뿌려서 그런가? 모래 없어지게 잘 씻자.”

“아닌데... 이거 발이 나왔는데.” 두희가 소라 껍질 하나를 가리켰다.

“엄마, 얘도 움직여요.”

깜짝 놀라서 가보니, 소라 껍질 두 개가 따각따각 움직이고 있었다.

겁 많은 넷은 깜짝 놀라 얼어붙었다. 엄마가 용기를 내었다.

장난감 집게로 조심조심 들어서 우선 물통에 넣었다.

넣자마자 제법 큰 소라, 작은 소라에서 집게발이 쏙 나왔다.




5. 소라게 인 더 하우스

그날 저녁, 다섯 식구는 채집통을 가운데 두고 거실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빠, 귀여워요. 이거는 이름이 뭐예요?” 검색해 보니 바다 소라게였다.

낮에 남편과 채집통과 먹이를 사러 다0소 몇 군데를 돌았지만, 원하는 건 없었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소금물과 담수를 섞어 통을 꾸며줬다. 벌써 소라게들이 애틋했다.


“엄마, 우리 얘네 키워요?”

“아니. 다음 주 주말에 다시 바다에 가서 놓아주자.”

남편이 슬그머니 말했다. “우선 큰 집이랑 먹이 주문하면 내일 오는 거지?”

일주일이지만 그 사이 편히 있으라고 큰 집과 소라게 전용 먹이를 주문하겠단다.


“여보... 벌써 정이 든 거 같아.”

“채집통에 얼굴 대고 말하지 말라고. 놀란다고.”

입김이 뿌옇게 서린 통에서 남편 얼굴을 떼어냈다.

“이름 지어줘야겠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뽀짝이(원희), 집순이(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가장 진심인 남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작은 소라게는 ‘마이리틀’, 큰 게는 ‘소라팝’ 최신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았다.


6. 소라게와 소라게 마을

일주일간 모든 식구들이 마이리틀 소라팝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심결에 눈이 갔다. 따각따각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 모두 우르르 달려갔다.

“엄마 먹이 왜 안 먹어요?”

새로 산 큰 집에 깨끗한 코코넛칩을 깔고, 신선한 담수와 해수, 먹이도 매일 새로 넣어줬다.

하지만 소라게들은 어두운 껍질 아래로 숨거나 물그릇 속을 기어 다닐 뿐, 먹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말까지만 버티면 될 텐데.. 마음이 초조했다.


바닷가에 가기로 한 전 날. 아침에 마이리틀이 껍질 밖으로 나와있었다.

처음 본 껍질 밖의 작은 소라게.

움직임이 없었다.

슬픈 예감을 느끼며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안 움직여요. 작은 얘가 왜 집 밖으로 나왔어요?”

“얘들아, 마이리틀이가... 소라게 마을로 돌아갔나 봐.”


빈 껍질인지 알고 무심코 집어 왔다는 핑계는 한 생명 앞에서 너무도 작은 말 같다.

텅 비어 버린 소라 껍질과, 밖으로 나온 소라게를 가만히 들어 올려 다른 통에 옮겼다.

‘정말 미안하다.’ 작은 집게발에 닿길 바라는 기도가 끊임없이 나왔다.


7. 소라게 귀향팀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채집통 앞에 섰다.

소라팝도 움직임이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조심스레 새 물을 부은 그릇으로 옮겨 주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다리가 쏙 나왔다.

“빨리 가자!” 남편과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채집통에 소라팝을 다시 옮겼다.

마이리틀이가 담긴 통도 같이 챙겨 들었다.

아이들은 ‘발이 따갑다’는 이유로 집에 있기로 했다.

2인으로 구성된 소라게 귀향팀이 꾸려짐과 동시에 출발했다.


한 시간 정도 달려, 인천대교를 지나 드디어 을왕리 바닷가에 다시 도착했다. 오전이라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쯤이었나?” 멀리 파도가 모래를 쓸고 있었고, 그보다는 가까이,

맑은 물이 졸졸 나와 고여 있는 곳으로 갔다.

“자, 이제 집에 왔다.” 남편이 천천히 소라팝을 꺼내 물 가까이에 놓았다. 우리가 잠시 이름을 붙였던 작은 소라게는 다시 바닷가 모래로 돌아갔다. 다행히 바로 사삭 발을 내밀어 금세 멀어졌다.

이렇게 보니 방금 놓았음에도 어디 있는지 잘 구분도 되지 않았다.

자기 집이란 그런 곳이니까.



8. 바다에서, 우리 집까지

마이리틀이와 껍질도 꺼냈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닷물이 소라게의 집 안까지 스며들었다.


나의 세상에서 나와, 눈높이를 낮춰 작은 게의 세상을 바라본다.


잠시 내가 바다이자 세상이었던 조그만 생명.

그 사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바다 내음이 잠깐 심장을 눌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스러져 가는 그 많은 '소라게'같은 존재들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부디, 닿기를.

"이름을 지어줄 수 있어서 고마웠어. 이제, 집으로 잘 돌아가."

남편과 나는 소라게의 빈 집과 생명의 자리를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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