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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Aug 15. 2021

열나흔날만에 찾은루클라 하산길

돌아오기 위해길 떠나는 트레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루클라까지 내려가는 날이다. 출발 전에 아쉬움이 남아 남체에서 가보지 못한 에베레스트 뷰 호텔을 다녀오기로 했다.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고도 440m를 극복해야 하기에 처음 남체에 올 때는 하루 고소 적응을 하기 위해 오르는 곳이다. 우리는 캉주마로 바로 올랐기에 가보지 못한 곳이다.


해발 3,880m에 자리한 에베레스트 뷰 호텔


에베레스트 뷰 호텔은 일본인이 건설했다고 한다. 루클라에서 헬기로 올라와 쉬었다 갈 수 있는 3,880m 높이에 있는 고급 호텔로 이 호텔에서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에베레스트 뷰 호텔이라고 한다. 거리상 그리 멀지 않아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가파른 오르막과 눈이 얼어 있어 미끄러워 속도가 나지 않는다. 30여분 늦을 것 같다. 이곳까지 와서 포터와 약속시간이 30여분 늦는다고 돌아가기엔 아쉬움이 남아 발을 재촉하였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산군


이른 아침에라 호텔 문은 열렸는데 청소하는 분만 있고 커피숍도 아직은 열지 않았다. 사진만 찍고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베란다로 나가 사진을 담았다. 호텔에 투숙 중인 분들은 우리네와 복장 자체가 다르다. 관광객의 복장으로 일출을 담으면서 원더풀을 연발한다.


인근에 자리한 네팔식 호텔(좌) 캉주마 가는 길의 불탑(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에베레스트 파노라마를 가슴속에 담고 사진에 담고 서둘러 남체로 향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6시 30분까지는 로지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부족하여 평지는 뛰듯이 재촉하며 내려와도 그간 고소 적응이 된 건지 숨은 많이 차지 않는다. 


봄이 오는 남체의 네팔 국화 랄리구라스


마음이 급해 직선으로 온다는 게 바로 내려오는 길이 없어 돌아 돌아오니 30분 늦었다. 롯지로 돌아오니 포터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시계를 보여주면 뭐라고 하는데 말뜻은 약속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하는 것 같다.

"미안! 미안!" 하다고 말하고 서둘러 아침식사로 프라이드 라이스를 주문했는데 야크 고기가 많이 질기다. 


민간 신앙물(좌) 남체의 거리 풍경(우)


그들의 마음을 생각해 서둘러 하산을 하는데 근 보름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그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돈 벌러 포터로 산을 올랐는데 집엔 아내와 자식이 손꼽아 기다리니 그들이 보고 싶겠다. 


남체를 떠나면서 뒤돌아 본 남체 마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7시 50분 남체를 출발하여 내려가는 길이다. 마음이 급한지 포터들은 서둘러 앞서 걷는다. 아쉬움이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남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체 입구에는 침엽수가 마치 자연휴양림처럼 무성한 곳도 있다. 고도를 낮출수록 점점 더워지니 복장이 점점 간편해진다. 그리고 꽃들이 피고 녹색의 나무가 많아진다.


남체앞 울창한 상록수림


아래로 내려올수록 인간이 살기 좋은 그런 환경으로 바뀌어 간다. 올라갈 때처럼 여전히 야크는 짐을 싣고 남체로 오른다. 점심은 올라갈 때 하룻밤을 보낸 팍팅 그 롯지에서 식사를 했다. 포터들의 행태는 늘 같은 롯지 같은 식당을  이용한다. 옆에 좋은 식당이 있어도 가지 않고 자기 단골을 이용하는 것 같다. 올라갈 때는 2일이 걸렸던 길을 하룻만에 내려오는데 무리는 없다.


체크 포인트에서 하산신고(좌), 라자도반 출렁다리(중앙), Tims(입산료) 체크 포인트에서 하산 신고(우)


오름길에 잠시 쉬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트레커


루클라가 가까워질 즈음에 포터가 자기 집에 잠시 들러 가자고 한다. 네팔의 가정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따라 들어갔다. 작은 동네 구멍가게를 하는 집인데 네팔인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바닥은 나무 마루고 한쪽으로는 부엌 반대편은 침실인데 별도로 구획이 있는 게 아니고 원룸이며 벽을 따라 장의자 같은 게 둘려져 있는데 그곳이 밤에는 침대로 사용한다고 했다. 별도로 난방장치가 없어 춥지 않으냐고 하니 춥지 않다고 한다.


포터집 내부 원룸으로 오른쪽은 부억 왼편은 침실(좌) 포터 삼부자 가족(우)


포터는 서른다섯 살로 결혼하여 아들만 두 명을 두고 있다. 일곱 살, 네 살의 가장이고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네 식구 가장으로 주 수입은 포터 생활을 하면서 버는 돈이라고 한다. 부인에게 "창"을 가져오라고 하니 큰 플라스틱 통에 창을 가져와 따르는데 집집마다 창의 맛이 각기 다른데 이 집의 "창"  맛이 최고다.


포터 집에서 마시는 네팔식 막걸리 창과 목에 걸어 준 하얀 명주 머플러


홀짝홀짝 마시니 마신만큼 금방 잔을 채워준다. 그게 네팔의 주법이란다. 네댓 잔 마셨더니 취기가 오른다. 아직 갈이 있는데 여기쯤 끝내고 1,000Rs를 부인 손에 쥐어주고 루클라로 향했다. 배낭이 한결 가벼워진 포터는 서둘러 앞서 가지만 우린 네팔의 풍경에 취하고 창에 취해 루클라로 향했다. 


루클라 가기 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하얀 토토병원" 앞에서 서울에서 온 구정맥 종주팀의 조 국장님 일행을 우연히 만났다. 카트만두에 첫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비행기가 안개로 연착하여 많이 늦었단다. 그분들은 오늘 팍팅까지 올라야 하니 바쁜 것 같아 하얀토토 병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지면서 EBC 사정을 알려주고 안전산행을 기원했다.


하얀토토 병원에서 만난 시청 트레킹 팀(좌), 김정식원장님과 기념사진(우)


하얀토토 병원의 원장님은 재미교포인 김정식 원장님으로 정식 닥터는 아니시고 침술을 배웠다고 한다. 부인은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단다. 이곳이 좋아 네팔의 깡촌인 루클라까지 와서 의료봉사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맛있게 타 주시는 커피를 얻어 마시고 이곳 소식을 들려주었다. 남은 약과 소소함 소모품은 모주 털어 주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히 쓰일 것이다. 내일 볼일이 있어 카트만두로 나가 신다고 하여 루클라 공항에서 뵙기로 하고 하얀토토 병원을 나섰다.


하산길의 풍경들


인생의 후반을 봉사하는 삶이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봉사는 내가 주인으로 사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카트만두로 가야 했기에 비행장 바로 앞에 숙소를 잡았다. 오랜만에 도시의 내음은 우선 편리함으로 다가온다. 가게가 있어 뭐든지 살 수 있고 맥주도 마실 수 있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런 편리함을 쉽게 털쳐 버리기 힘든 것 같다. 


이제 에베레스트 트레킹이 끝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칼라파타르(5,545m)와 촐라패스(5,330m) 그리고 교쿄리(5,360m)는 두 번씩이나 올랐기에 이번 트레킹은 120% 성공이다. 자축을 하기 위하여 오랜만에 맥주 파티를 열었다. 그간 고산 산행으로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후배는 몇 잔 마시지 못하고 꼬박꼬박 존다. 서울에서는 평소 주량이 나보다 훨씬 센데 고산의 피로가 주범인 듯하다. 


숙소에서 자라고 그냥 두고 식당에 가서 닭고기와 감자튀김, 산미구엘 맥주를 혼자 마시면서 14일간의 여정을 뒤돌아 보았다. 큰 기대감을 갖고 출발하여 남체에서부터 서서히 고소를 느끼고 데보체에서 첫 고소 경험을 하며 잠 못 이루고 그 후 고소를 잘 적응하여 계획한 코스를 오르는 행운이 있었던 것은 촐라패스가 뚫려 촐라패스를 넘고 교쿄리를 올랐던 것이다. 


트레킹의 종점이자 비행장이 있는 루클라


내일이면 쿰부 히말라야를 떠난다. 그간 영상으로 책으로만 본 이곳을 내 두발로 걸었다는 게 꿈만 같다. 그간 40년 넘게 국내. 외산행을 하면서 우선 최고봉의 정점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그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없지만 그 언저리에서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과 행운이 있었던  아닐까? 그 벅찬 감정을 가지고 오늘 밤이 세면 인간의 문명 세계 카트만두로 간다. 무사히 온전히 산행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에베레스트 신의 큰 보살핌이 있었던 것에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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