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생각보다 심한 욕일까?
이탈리아의 경제사학자 카를로 M. 치폴라(Carlo M. Cipolla)는 이 단어를 아주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의 짧은 에세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하여(Le leggi fondamentali della stupidità umana)』는 마치 철학자의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오히려 통계학자의 냉철함에 가까워진다.
치폴라는 인간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남도 이롭게 하고 자신도 이익을 얻는 지혜로운 사람, 남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불행한 사람, 남을 해치며 이득을 취하는 악당, 그리고 자신과 남 모두를 해치는 바보. 그는 말한다. '바보의 수는 사회 전체에서 항상 과소평가된다.'
이 간단한 문장은 거의 인간 사회의 법칙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이 네 부류는, 놀랍게도 패션이라는 세계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지혜로운(intelligent) 소비자
그는 패션을 시간의 예술로 본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실루엣을 고르고, 한 철 유행보다는 손끝의 감각과 소재의 질감을 믿는다. 세탁법을 알고, 수선을 즐기며, 옷의 생애를 책임진다. 패션이 아니라 스타일을 가진 사람.
불행한(hopeless) 소비자
그는 브랜드를 믿는다. ‘이 브랜드는 여성의 자유를 말하니까’, ‘이 캠페인은 환경을 지지하니까’. 하지만 옷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가격은 지나치게 비싸다. 그는 종종 그 믿음 때문에 손해를 본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패션을 소비가 아니라 신앙처럼 여긴다.
악당(bandit) 소비자
그는 희소성을 즐긴다. ‘리셀가가 3배야’, ‘이건 파리 매장에서만 팔아’. 트렌드를 독점함으로써 타인의 열망을 지배하고, 그 배타성 속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한다. SNS 속에서 ‘진짜’를 말하지만, 정작 그 말은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암호처럼 작동한다. 그는 패션을 권력으로 만든다.
바보(stupid) 소비자
그는 트렌드의 끝에 선다. 새 시즌이 나오면 지난 시즌을 통째로 버리고, ‘이번엔 꼭 내 스타일일 거야’라며 다시 구매 버튼을 누른다. 유행의 굴레를 가장 충실히 따르며,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가장 순수한 존재다. 그는 누구보다 패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손해를 본다. 치폴라의 분류에 따르면, 그는 자신도 손해 보고 남도 해치는 존재. 하지만, 패션 업계는 바로 이런 ‘바보’들 덕분에 돌아간다.
패션은 어리석음의 가장 세련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치폴라가 『어리석음의 법칙』을 쓴 건 냉소에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그는 어리석음을 제거할 수 없는 자연적 상수로 봤다. 그 말은 곧, ‘우리 모두 조금은 바보다’는 뜻이기도 하다. 패션도 그렇다. 우리는 “지속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새 시즌을 기다리고, “미니멀리즘”을 외치며 또 다른 흰 셔츠를 산다. 트렌드에 휩쓸리고, 피드 속 사진에 마음을 빼앗기며, 합리와 욕망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바로 그 모순이 패션을 만든다. 결국 패션은 어리석음의 가장 세련된 표현이다.
다만 그 어리석음을 자각한 순간,
우리는 비로소 스타일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