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흔해진 시대, 어설픔이 곧 희소성

허점이 매력이 될 수 있을까?

by 무스꾜

'korean morning skincare'라는 캡션이 달려있는 릴스를 봤다. 묘하게 빠져들었다. 진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는 고리타분한 성분 설명도 없고, 유려한 말솜씨의 전문가 톤도 아니다. 한국인 특유의 영어 억양을 숨기지도 않고, 오히려 그게 영상의 포인트라는 듯이 말도 어휘어휘 끊어서 한다. “올웨이즈 톡톡톡~ 올드 타올 노노. 비커즈 매니 박테리아. 미 노 타월. 윈드 윈드 톡톡톡~” 어디로 흐를지 모르겠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이상한 끌림. 완벽하게 짜인 대본보다 그냥 그 사람 고유의 캐릭터가 뇌리에 더 오래 남았다.


최근에 본 다른 콘텐츠도 그랬다. “인스타가 만약 최고의 순간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의 수치스러운 컨텐츠를 올리는 곳이라면?”이라는 상상. 그랬다면 우리는 떨어진 면접 결과, 고백하고 차인 이야기, 묘하게 꼬여버린 하루 같은 걸 아무렇지 않게 올렸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겪지만 다들 숨기는 순간들. 실제 사람은 흔들리기도, 망가지기도, 엉뚱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패션 플랫폼 SSENSE는 ‘나쁜 취향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못생겼는데 괜히 시선이 붙잡히는 것들 올렸다. (@uglydesign) 예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도 안 되는데 마음에 남는 것들.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은데 자꾸만 눈이 간다.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도 패션 뉴로시스 팟캐스트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자긴 ‘옷을 못입는 사람’을 관찰하는 게 재밌다고. 그 어울리지 않는 옷들 사이에서 오히려 새로운 조합을 떠올릴 때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 저 사람은 오늘 스타일링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에 시간을 쓰고 싶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사람의 매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다고.


지금 시대는 ‘잘하는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어색하고, 급했고, 실패했고, 완벽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오히려 정직하게 와 닿는다. 그 틈 사이에서 우리는 새로운 조합을 보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예상하지 못했던 취향을 발견한다. 생각지도 못한 말투와 흐름, 예쁘지 않은 물건, 촌스러운 매치, 부끄러운 순간들이 여느 때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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