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May 04. 2023

키 작은 설움

 

  얼마 전 언니와 조카 사이에 미묘한 감정 실랑이가 오간 모양이다.   언니가 친구들 모임에서  조카가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사람이 '눈은 참 맑고 선 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는데 키가 작아도 너무 작아'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조카한테 했단다. 조카는 남들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한 것도 걸리고 언니의 키가 너무 작다는 말을 마음에 안 든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내가 없는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싫다고 한 적도 없는데, 남들한테 자기 남자친구에 대해  말 안 했으면 좋겠다더라." 조카의 말에  얹잖은 기분이 된 언니가 내게 전화로 하소연을 했다. 나는 조카와 언니 사이에서 잘못하다간 어느 한쪽 원망 듣겠다 싶어 적당히 양쪽을 두둔했다.

"언니 아쉬운 마음도 이해가지만 언니 딸도 키 작은데 언니도 참.... 언니가 키가 작아서 마음에 안 든다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나 싶어 그랬겠지 뭐. 제삼자가 나랑 친한 사람 단점 얘기하면  싫잖아요. 그런 거겠죠, "  

" 하긴 누가 내 친구 욕하면 기분  안 좋지. 하지만 사실 자기가 좋다니 나도 받아들이긴 하지만 완전히 맘에 드는 건 아니라서.... 둘 다 작으면 애도 작을 거라 아쉬워서."

  결국 언니가 조카의 마음을 이해하며 잘 마무리된듯한데 사실 나로서는 언니의 아쉬운 마음에 더 공감한다.  아무래도 키 작은 사람은 남에게 왜소해 보이기도 하고 2세를 생각하면 조카가 키 큰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더 좋았지 싶다.  나도 키가 작지만 키가 작아서 피해 주거나 손해 본 것도 없는데... 아니 생각해 보니 많다. 그래서 작은 키의 단점에 대해서 써보기로 했다.


 예전에, 출근길 전철 안에서 앞뒤로 키 큰 남자가 서 있으면 여러모로 불편했다. 우선 신체 접촉의 불쾌함은 차치하고 숨쉬기도 힘들고,  고개를 들거나 돌리지도 못하는데 남자들 옷에 화장품 묻힐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다. 사실 어쩔 수 없이 얼굴 분이나 립스틱을 묻히도 했다. 한 번은 사람들에게 밀려 어떤 남자의 흰 셔츠에  얼굴을 박아버리는 바람에 분가루와 립스틱을 너무 강렬하게 묻혔다. 그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세탁비도 물어드리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릴 때도 떠밀리듯 내려 끝내 아무 말 못 했다.  사실 말하는 게 두 렵기도 했고, 아침 출근길이라 바쁘기도 하고, 사람이 많아 누가 그랬을지  모를 거다 싶어  모르는 척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키 큰 남자분 곤혹스러웠을 텐데.....

   또 키가 작은 사람은 공공시설의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안 닿을 때 참 난감하다.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물건 집을 때  진열대가 높고,  근처에 마트 직원도 없으면 물건 사길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집안에서도 옷걸이에 옷을 걸으려 까치발을 서야 한다거나 다른 보조도구를 이용해야 하니 참 난감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외적으로 폼이 좀 나니, 외모 콤플렉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바지를 새로 사면 바로 입고 외출하질 못하고 기장을 항상 줄여야 하니 참 불편하다.  

 그리고 2세 걱정을 해야 함이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예전에 키가 큰 게 우생학적으로 우성인자라고 키가 작으면 키 큰 남자를 만나 야  떠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한다. 하긴 내가 그 증거다. 나의 아버지는 키가 큰 편이고 어머니는 작았는데 어머니를 닮아 내가 키가 작다. 물론 어머니보다는 크지만...

 사실 학교 다닐 때에는 키가 작다고 스트레스받은 적이 없다. 새 학기 시작 하는 날 키순서로 번호를 정할 때 중간쯤에서 번호를 받았고 내 시절에는 여자 평균키가 내 키보다 1센티 작았으니 평균이상이라고 꿋꿋하게 믿고 살았다. 하지만  내가 사회에 나오고 시절이 바뀌며 사람들의 키가 쑥쑥 켜지고 나는 나이와 자세 때문에 점점 오그라들고 있다.  세월에 점점 쪼그라들어 조롱에 들어가 사는 "쿠마이의 무녀"이야기가 내게  현실화한 느낌이다.

  19세기 동북아시아에 진출한 서양인들이 가장 놀란 점이 한국인이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달리 키가 상당히 커서 놀랐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최영장군이나 김구선생도 지금으로 따지면 190센티 정도였다고 하니 우리 민족이 키 작은 민족이 아님은 명확하나  '작은 고추가 맵다'거나 '키만 멀대같이 커서 싱겁다' '허우대만 멀쩡하고 실속이 없다' 등의 큰 키를 깎아내리며 작은 키를 옹호하는 옛 말들이 많이 존재하는 걸 보면 옛날에도 키가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레스였던 듯하다.  얼굴이 잘 생겼음에도 키가 작아 늘 고민인 한 남자지인은  남자들의 경우 키가 크면 외모에서 90%는 거저  가진다고 하며 키에 열등감을 표하곤 했다.  나는 작아서 귀엽다느니 심지어 여려 보여 보호본능 자극한다는 말도 들어봤으니 여자라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키가 컸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언니의 사윗감이 키가 작아서 아쉽다는 말에 공감도 하면서,  자기 일 잘하며 마음씀씀이 바르면  됐지 남의 집 귀한 아들  괜히 가십거리 삼지 말자고 어설픈 훈계질도 하다 생각해 보니 키가 작은 게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자신을 열심히 옹호해 주는 든든한 여자친구도  있고 조카의 남자친구는 키가 작아 서럽진 않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선의가 악의가 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