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두려운 아토피 환자
성경의 욥(Job)과 나의 고통의 역사
땡볕, 장마, 소나기, 무더위의 계절 여름이다. 내게 여름은 지긋지긋한 아토피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지 않냐고 반문하지만 중증 아토피 환자에게 작열하는 태양과 땀이 흐르는 여름은 형벌 같은 계절이다.
지난주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을 때 다행히 면역력도 좋아지고 암표지자 수치도 미세하지만 내려갔다는 의사말에 산책을 시작했다.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나갔건만 본격적이진 않지만 여름이니 조금 움직이도 땀이 나고 몸이 후끈해지고 가렵기 시작했다. 아토피가 시작된 것이다. 피부과에서 약을 처방받았고 시간차를 두고 약을 먹으라는 말에 아침에는 항암제 점심에는 피부약을 먹었다. 약에 몸이 휘져 누워있는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토피 약을 먹으니 몸이 늘어진다는 말에 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했다.
“아기 가진 사람이 밥은 안 먹고 한약만 먹어 댔으니, 태아한테 그 독한 기운 다가서 이렇게 됐지, 뭐!”
나이차가 12실이나 나니 내가 모르는 엄마를 아는 언니의 의견은 이렇다. 나를 가진 후 입덧이 심한 어머니는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께서 그런 어머니를 위해 한약을 지어 와 한동안 한약을 밥대신 먹었으니 내가 아토피가 심해인 것이라는 게 언니의 분석이다. 내가 선천적 중증 아토피 환자이니 일면 동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내 아토피를 없애려 고생한 기억이 떠오르며 언니의 원망은 동생이 안타까워 나온 한숨으로 흘려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언니의 기억은 나의 아토피 역사를 따져보는데 상당히 유용하다.
처음 시작은 보통 그렇듯 아기 때였다. 내 친할머니가 두 돌 때쯤 오셨다. 그리고 닭백숙을 진하게 고아 내게 먹였고 그날 밤, 오랫동안 칭얼대다 간신히 잠들었나 싶어 어머니도 눈을 붙였단다. 새벽녘 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소리에 깨어 불을 켰을 때 어머니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아기의 얼굴과 몸 구석구석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 작은 손톱으로 얼마나 야무지게 긁어 댔는지 얼굴 곳곳에 피가 맺혀 있고 심지어는 흐르기까지 했다. 그 뒤 할머니니 쉬지 않고 울어대는 내게 계집애가 집안 말아먹으려고 저렇게 울어 대단다고 싫은 기색을 대 놓고 드러내었단다. 어머니는 닭백숙을 아기에게 먹인 할머니를 원망했고, 지금 언니는 엄마를 원망하고, 나는 피부병을 달고 살았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원망한다. 이렇게 원망이 돌고 도는 것은 원인도 불분명한 아토피에 대한 화를 토해 내야 마음이 살 만하다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아토피 때문에 운명을 논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중증 성인 아토피 환자 대다수가 일상에 상당한 지장을 받는다. 성인 아토피 환자의 가장 환장할 고충은 바로 시선이다. 심지어 어떤 아토피 환자는 대인기피증으로 히키코모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나도 아토피란 말이 통용되기 전, 한 20년 전쯤 버스에서 전염병 환자 취급을 받았었다. 버스를 타고 내내 나를 힐끔거리던 앞자리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피부병이 이래? 두드러기 난 것 같지 않고, 뭐 전염성 있는 건 아니지, 아가씨? 본인이 알아서 이런 대중교통은 피하지 참....” 아주머니의 쩌렁거리는 목소리에 운전기사를 제외한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아토피라서 이래요.” 그때 난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변명하듯 말했다.
“아토피가 뭐래?”
“그러니까 태열이요.”
“아니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태열이 왜 다 큰 아가씨한태서 나타나?”
예전에는 피부과에서 아토피를 성인 태열 환자라고 불렀다. 어찌 보면 나는 이미 시대를 앞서 선진국병, 환경 병, 도시형 발전 병으로 알려진, 물론 나의 경우 유전적 원인이라는 진단이었지만, 아토피 피부염 환자로 웬만한 유명 피부과, 한의원과 대학 병원을 섭렵하고 다녔었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고 한 대학병원에서는 아토피는 면역체계 이상 반응으로 연고나 보습만으로 근본 치료가 어렵고 스테로이드도 장복하면 문제가 있으니 약을 바꾸자 해서 간이나 신장 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먹는 면역억제제를 일 년 넘게 먹기도 했었다. 보험도 안 돼서 내 한 달 월급의 반을 약값에 쏟아부었는데 그래도 나름 약효과가 다소 있었다. 아토피는 소아기를 지나며 대부분 사라지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중증으로 나타난다면, 생활비의 삼분의 일 이상을 투자해야 비로소 얼굴 들고 나다닐 만해지는 고급 병으로 실상은 저급한 생활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천형이다.
성경의 욥기에 내가 무릎을 딱 쳤던 구절이 나온다.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기 3장 26절)” 착한 사람 욥은 이해 불가한 고통을 당한다.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부스럼 때문에 손으로 긁는 것에 성이 안 찼던 욥은 기왓장을 깨뜨려 그것으로 온 살갗을 북북 긁는다. 피고름이 맺힐수록은 기왓장 파편이 울퉁불퉁할수록 긁어서 부스럼이 될지언정 살만하다고 느낀다. 어차피 새벽녘이 되면 이 가려움은 기왓장 파편이 생살을 에인 결과로 처참한 몰골과 타는 아픔으로 잠도 못 들 테지만 그래도 긁는 현재는 살만해지니까. 이러한 증상으로 보아 욥은 분명 아토피 환우였다는 것이다.
아토피가 얼굴까지 퍼져있는 상태라면 그 몰골은 처참하다. 처음엔 버짐 피듯 이마나 턱 주변에 각질이 생기고, 여드름처럼 생긴 종기들이 옹기종기 일어난다. 붉게 부어오른 얼굴은 화상환자처럼 울퉁불퉁하고 밤새 저도 모르게 긁어대기라도 한다면 진물이 마르면서 눌어붙은 피부에 딱지까지 져서 흉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대체 아무리 약을 먹고 바르고, 조심을 해도 사라지지 않으며, 가려움증 때문에 생기는 불면증에 언제나 바짝 손톱을 깎아도 온몸에 문신처럼 손톱자국을 달고 다니는 환장하게 가려운 것이 아토피의 증상이다. 그 가려움의 정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벌레에 물린 정도가 아니라 피가 나도록 박박 긁게 되고 피를 보면 그 가려움이 더 극심해진다. 생각건대 아토피를 천형의 고질병으로 묘사한 가장 위대한 문학(실제 욥기는 내용과 플롯의 구성이 서사문학의 절정이다)이자 주변에 섣부른 따돌림 그리고 이런 형벌이 왜 생겼는지 도대체 하나님의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는 표현의 집대성이 욥기이다. 영어로 욥이 Job 인 것만 봐도 욥의 고통이 인간의 운명처럼 느껴지는데 그나마 욥기가 해피엔딩이라는 게 위로가 되긴 한다.
요즘 들어서는 다행히 독한 항암치료 덕인지 체력이 달려 면역력이 활성화되질 못하니 아토피가 기를 못 펴서인지 지난 몇 년간 그래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고 항히스타민제로 그럭저럭 견딜만해졌지만 여름이면 여전히 아토피가 기승을 부린다. 겨울에는 난방기의 열기와 바람을 피하고 보습에 신경을 쓰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그러나 태양빛 강렬한 덥고 습한 여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서기 때문에 피부과에서 주사를 맞고 스테로이드제와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피부에 발라야 살만해진다. 흐르는 땀에 몸이 따갑고 가려워 자주 샤워를 하니 보습에 겨울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고 햇빛에 민감하지만 화장품에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는 SPF50+ PA++++라고 쓰인 자외선차단제만 봐도 온몸에 두드러기 난다. 몇 년 전까지는 열심히 찾으면 SPF25나 30의 순한 민감성 피부용 제품들이 있었지만 올해는 기존에 쓰던 제품들이 거의 단종이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다양성을 기피할까. 상업성 이 없다는 이유겠지만. 하여간에 유월이 되고 아토피가 슬금슬금 올라오니 대비책을 생각해 본다.
올해는 자외선차단제대신 화장을 하여 피부를 보호해야겠다. 색조 화장품들에 자외선 차단효과가 있어 피부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올라와 활동을 늘리려 생각하는데 아토피도 면역력과 더불어 활성화된 올여름은 화장을 짙게 하고 외출을 하려 한다.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립스틱도 빨간색으로 발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