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의 생존법과 구원
이야기하기(Storytelling)의 가치
" 왕이 죽었다. 그 후에 왕비가 죽었다."
두 문장은 일련의 사건을 순서대로 서술한다. 위의 두 문장에 한마디를 덧붙여보자.
"왕이 죽었다. 그 후 비통함에 왕비도 죽었다."
“비통함에”라고 한마디 넣었을 뿐인데, 왕과 왕비의 죽음이라는 두 사건을 배열하는데 인과 관계. 즉 플롯(plot)이 생성이 되었다.
위 예문은 사건을 시간 순으로 배열한 “이야기(story)”와 소설가가 자신의 의도에 맞춰 사건을 재구성한 “플롯(plot)의 차이를 설명한 것이다. 이는 영국의 대문호 E. M. 포스터 (Edward. Morgan Foster)가 소설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출간한 『소설의 양상(Aspects of the Novel)(1927)』의 "플롯" 부분에서 등장한다. 포스터에 따르면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이야기’는 청자/독자의 “그 다음은?(And then?)” 이란 반응, 다시 말해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반면 플롯은 같은 사건을 서술하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시간 순서가 아닌 작가가 자신의 의도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플롯은 독자/청자들에게 이야기가 주는 호기심뿐 아니라 ‘왜?(why?)'라는 반응을 유도한다고 포스터는 말한다. 가공의 이야기들을 통해 세계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소설이라는 서사매체에서 플롯은 작가의 창조작업영역이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는 이야기(story)는 이야기는 전달과정(telling)이이 과정이 수반되어야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 이런면에서 현대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야기꾼은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포스터의 플롯에 대한 쉽고 적절한 설명은 서사를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작가의 창조작업과 독자에게 다가가 어떻게 영향력 발휘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일상을 되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이야기하기의 힘을 맹신하는 나는 픽션, 논픽션, 역사서나 소설로 서사체들을 분류하는 하고자 함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세사체가 삼위일체가 될 때 파생하는 힘을 이야기하려 한다. 당연히 서사의 창조자로서 이야기꾼인 작가의 의도와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이야기하는 화자(teller)와 듣는 이(listener)가 전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기억 속의 일련의 사건들을 전달할 때, 청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하기를 바라며 사건을 배열한다. 강하게 인상을 줄 것은 좀 더 길게 강조하기도 하고 사소하고 뻔한 일은 배제시키기도 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작가가 플롯을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여 독자가 자신이 만든 세계를 보고/듣고/읽을 수 있도록 하는 행위는 창조적인 것이다. 시간 때우기든, 위로받기 위해서 혹은 교훈을 받기 위해서든 이야기를 갈망하는 독자/청자에게 작가/화자는 이야기를 전달받아 정체성을 깨닫고 의미가 생성되게 하는것이다.
이야기하기의 가치는 상호 전달을 통한 의미 파생이다. 이야기, 이야기꾼, 청자의 역할과 반응 그리고 의미 파생 기능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사가 "아라비안 나이트"이다. 천일동안 난폭한 왕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야기의 끝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활용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왕의 피폐한 정신을 구한 세헤라자드는 서구예술계를 넘어 동양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야꾼으로 여전히 통칭되고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시작은 죽음을 목전에 둔 여자 세헤라자드의 절박함이었다. 오래전 첫 왕비에게 엄청난 배신당하고 여자를 불신하는 왕(술탄)은 여자에 대한 불신과 복수심에 결혼 첫날밤을 보내고 나면 새 왕비를 죽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수십 번째의 새 왕비가 된 세헤라자드는 다음날 아침에 왕이 자신을 죽이지 않게 하려, 왕이 잠들지 못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침이 되면 죽을 운명인 그녀는 절박하다. 오로지 이야기만으로 왕의 호기심만 이끌어 내야 하고 궁금증에 그녀를 죽이지 않기로 왕이 마음을 바꾸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로 왕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계속 이야기를 욕망하도록 계획을 짠다. 그리고 결정적 장면에서 이야기를 멈추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은 술탄이 그녀를 살려둘 수밖에 없게 한 것이다. 천일 동안 이야기꾼이 되어 세헤라자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결국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세계와 사람을 경험한 왕은 그녀를 살려두기로 마음을 바꾸며, 과거 거짓과 배신으로 잔혹하게 피폐해진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이렇게 천일 동안의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서사가 완성된다. 여기서 소설뿐 아닌 보다 광범위하게 서사 창조의 과정을 아우르는 이야기꾼/작가가 어떻게 생명을 이어가며 무서운 독자와 소통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독자인 왕을 설득하기 위해 세헤라자드는 계략(plot)을 짜서 왕이 이야기를 욕망하게 만들며 서사가 끝날 땐 그 욕망이 해소되며 카타르시스를 얻도록 한 것이다. 이야기의 힘은 시작과 끝이 있어 언제가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끝이 언제인지 몰라 불안하게 현실을 사는 인간에게 '시작과 끝을 이야기로 재현하여 보여줌'으로써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이야기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화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함으로써 생명력을 얻게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