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그림이 마음에 드는 걸까

정석의 파괴

by 정상희

앤디 워홀에 대해 쓰지 않기로 한 이후, 더 이상 글의 진도가 나가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앤디 워홀에 대해 쓰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 유명하고 중요하지만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작가들이 그 이후에 아주 많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미술 공부를 위해 억지로 넘어야 하는 산인 걸까요? 아니면, 나는 장애물을 만나면 그저 그걸 돌아 흘러가는 물처럼 자유로워도 되는 것일까요?


그러던 와중에 오늘 오전, 아래의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지역 전문대학에서 봄 학기 아트 수업들의 리스트가 나왔다는 이메일을 받고 그걸 찬찬히 다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웹사이트 맨 아래에, 학생들 작품 몇 개를 예시로 포스트해 놓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작품, 앤디 워홀의 수프 캔 작품을 패러디해서 레이블이 찢어진 캔을 똑같이 그려 놓은 이 작품을 보고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러자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어요. 그 마음에 대해서요.


Screen Shot 2025-11-11 at 5.47.53 PM.png Artist: Jun Hang; Title: Big Torn Campbell Soup Can; Acrylic, 24"x 18"


아마 내가 별로 못마땅해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수프 캔 그림을 찢어 그려 놨기 때문에 시원하고 고소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유명하고 너무 대단하고 너무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 (별거 아닌) 그림을, 마치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다고 속시원히 외쳐 주듯이 레이블을 찢어서 똑같이 따라한 점이 내 마음에 딱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당시에 앤디 워홀의 그림에 열광했던 사람들도 사실 나랑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도 그 대단한 추상 미술들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천재성을 빛내며 우러러 떠받들어지고 있는 마당에, '예술이 꼭 그런 거여야만 해? 이런 것도 예술이야!' 하고 사람들이 주변에서 늘 쉽게 볼 수 있는 상품 포장 디자인을 똑같이 그려 갤러리에 걸어 놓음으로서 기존의 "정석"을 파괴하는 그 통쾌함! 그들도 그런 게 좋았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치면, 그 파괴적 새로움이 세월이 지나 다시 정석, 내지는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정전(正典)으로 떠받들여지는 아니러니는 도대체 뭘까요? 그냥 꾸덕꾸덕한 세월의 때일까요? 오래된 것이라고 반드시 지겨워지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여튼 위의 저 그림은 저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하나 준 것 같습니다. 항상 무언가 정석인 것을 깨어 보려는 시도에요. 무엇인가 다른 것. 무언가를 극복하려는 몸짓.


그냥 잘 그려진/ 잘 만들어지기만 한 것은 예술이 아니지요. 어딘가에서 이런 분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품: 똑같은 공정을 통해 제작된 것

상품: 소비자를 대상으로 팔기 위해 제작된 것

작품: 예술가가 자기가 좋아서 만든 것


그러므로, 제가 저 혼자 좋아서 무슨 그림을 하나 그렸다면, 그것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상품 가치가 있든 말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앤디 워홀은 제품 제작 과정과 같은 공정을 거쳐 제작하는 (아예 자기 스튜디오 이름도 '팩토리' (공장) 이라고 짓고 조수들을 고용해 작품을 대량 생산했다지요) 상품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냈거든요. 제품=상품=작품=예술... 아주 그냥 모든 걸 납작하게 빠삭 눌러버렸어요.


그는 또한 아주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성공에 집중했습니다.


"Being good in business is the most fascinating kind of art. Making money is art and working is art and good business is the best art".


"장사를 잘 하는 것은 가장 멋진 예술이다.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고, 일하는 것이 예술이고, 잘되는 장사는 최고의 예술이다." - 앤디 워홀


그냥 아주 시원 뻥뻥하네요. 뭐, 맞는 말이기도 하죠. 저는 여기에 토를 달 생각은 전혀 없고요. 능력 좋으신 분들을 보면 아주 부럽고 존경스럽기도 하니까, 그들도 일종의 예술가인 것은 사실입니다. 돈 버는 것도 예술이죠.. 암요. 종류는 좀 다르지만요.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저 찢어진 레이블 수프 캔 그림이 지금 돈을 벌고 있는 건 아니죠. 학생 작품이라잖아요. 그렇지만 그 작품이 제게 뭔가 청량감을 안겨 주었기 때문에 저는 그 작품이 좋은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또, '뭐야, 그냥 앤디 워홀 그림을 살짝 비틀어 그렸을 뿐이잖아!'라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게요,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잖아요. 이걸 어쩌겠어요. 원래 그런 걸.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는가, 왜 그것이 내 마음에 드는가를 잘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나 자신을 잘 아는 거고, 게다가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까지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러한 시도로서 저도 그냥 몇 줄 써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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