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벌판을 확장하다

헬렌 프랑켄탈러

by 정상희

엄청난 액션 에너지를 캔버스 위에 쏟아낸 잭슨 폴록과 대칭점에 서는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는 역시 미술책에서 많이 보신 마크 로트코가 있습니다. 모든 작품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로트코의 작품들은 직접 보셔야지만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커다란 캔버스 위에 펼쳐진 단순한 색의 사각형일 뿐이지만, 뭔가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듯한 진정효과가 있습니다. 좀, 선(禪)적인 느낌이랄까요? 잭슨 폴록의 '액션'에 비교되는 '정적인' 느낌이 주도적이기 때문에 로트코와 폴록이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지요.


로트코가 색의 평면을 이용한 '컬러 필드' 예술가 1세대라면, 그의 뒤를 이어 색의 벌판을 더욱 확장한 예술가로 헬렌 프랑켄탈러가 유명합니다. 프랑켄탈러는 잭슨 폴록이 아무런 처리가 되지 않은 캔버스 천에 페인트를 뿌리며 작업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지만, 자기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폴록처럼 아무런 처리가 되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대신 커다란 스폰지에 묽게 만든 페인트를 적셔 바닥의 캔버스를 물들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걸레로 방을 닦는 동작을 생각해보시면 딱입니다. 아예 묽은 페인트를 캔버스에 쏟은 후에 그걸 대걸레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온 몸을 사용해 그 큰 캔버스 위에 자신의 느낌을 물들여갔습니다.


Mountains and Sea_Frankenhaler_1952.png <Mountains and Sea> by Helen Frankenhaler. 219.4 x 297.8 cm. 1952년 작품.


그녀가 고안해낸 이 새로운 방식의 화법은, 물감이 마치 수채화처럼 가볍고 투명하게 캔버스 위를 떠다니는 것 같은 효과를 줍니다. 그녀가 23살에 그린 위의 그림 <산들과 바다>는 캐나다의 노바 스코샤 지역을 여행하며 느낀 대자연의 광활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산과 바다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느낀 자신의 감정을 캔버스 위에 표출한 것입니다. 그녀가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전시했을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이후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항상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그 가벼운 물감의 자유로운 운동감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 물감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캔버스의 크기 때문에도, 방대하게 열린 느낌을 줍니다. 아래 그녀의 작업실 사진을 보시면 그녀의 작품들의 크기가 대강 짐작이 가시지요?


Screen Shot 2025-10-24 at 11.30.20 AM.png Helen Frankenthaler in her studio. New York, 1964. Photo: Alexander Liberman. © J. Paul Getty Trust


헬렌 프랑켄탈러는 아버지가 뉴욕 주의 최고등법원 판사인 아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부모의 전적인 신뢰와 지원 아래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부럽죠? 당시 최고의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사귀면서 예술계의 다양한 작가들 및 중요한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 들을 쉽게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그의 영향력 안에 있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혼자 서 보고자 점차 그에게서 거리를 두기도 했다는군요.


Helen Frankenthaler, Alassio 1960; oil  on canvas 216.5 × 332.7 cm.png <Alassio> by Helen Frankenthaler. 216.5 × 332.7 cm. 1960년 작품


이런 그림은 아무리 불규칙하게 보이더라도 '이건 누구나 하겠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뿌리기 기법이랑은 다르게, 이거 정말, 아무렇게나 페인트 쏟아 붓는다고 되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아래의 그림을 좀 보세요. 바다 그 자체를 그린 건 아니지만 바다의 느낌을 듬뿍 안겨주면서도, 아주 조금씩 들어가 있는 저 오렌지, 녹색, 빨강, 검정 등등... 저런 균형미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요? 와..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Helen Frankenthaler, Ocean Drive West #1_1974 acrylic on  canvas, 238.8 × 365.8 cm.png <Ocean Drive West #1> Helen Frankenthaler. 238.8 × 365.8 cm. 1974년 작품


헬렌 프랑켄탈러는 회화뿐 아니라 판화 기법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제가 판화는 잘 모르지만, 보통 목판화라고 하면 아주 투박한 컷의 흑백 판화라든지, 일본의 채색 목판화들이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프랑켄탈러는 채색 목판화 기법을 발전시켜 아래와 같은 투명한 느낌이 나는 작품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가볍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나는 작품이 목판화라는 사실이 믿겨지시나요? @.@


Helen Frankenthaler, Weeping Crabapple, 2009 Color woodcut, 64.1 × 94.6 cm.png Helen Frankenthaler <Weeping Crabapple>. Color woodcut, 64.1 × 94.6 cm. 2009년 작품.


프랑켄탈러의 판화 작품은 풍부하고 반투명한 색면, 여러 겹의 표면, 유동적인 형태를 자주 보여줍니다. 이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더 공부해 본 바에 따르면, 그녀는 회화적 감수성과 판화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예술과 그래픽 복제의 경계를 흐렸고, 이는 디자이너들에게 판화 및 다른 매체들도 단순한 복제가 아닌 재료적·과정적 혁신의 장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열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의 대형 목판화와 판화들은 인쇄 매체가 기념비적인 규모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는 나중에 환경 그래픽, 대형 벽 그래픽, 공공 공간 디자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었고요.


Installation view including Helen Frankenthaler, Savage Breeze, 1974, six colour woodcut from eight woodblocks, 31 1:2 x 27 inches (80 x 68.6 cm) and working copies.png Helen Frankenthaler, <Savage Breeze>. 목판화. 80 x 68.6 cm 1974년 작품


위의 사진에서 보시듯, 그녀가 작업을 한 과정에 따라 매번 다른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예전에는 판화를 그저 같은 것을 반복해서 수백 수천 장을 찍어낼 수 있는 기법으로만 여겼다면, 프랑켄탈러의 작업으로 판화는 매 회 다른 에디션을 찍어낼 수 있고, 따라서 작품의 각 '회차/에디션'의 고유성을 확보해 내게 됩니다. 조금 더 상업적인 기술의 의미에서 중시 되었던 판화와 순수 예술로 여겨지던 회화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 낸 것이지요.


이 지점이 그녀와 앤디 워홀이 극과 극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 판화 기법을 사용해서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이미지들을 기계적으로 다시 복제해 냄으로서 예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면, 헬렌 프랑켄탈러는 주로 상업용으로 이용되던 판화라는 제한된 기법의 경계를 터버리고 그걸 회화와 동등한 예술로 끌어 올린 작가입니다.


철학적으로도, 앤디 워홀은 상업성 대중성을 등에 업고 대량생산, 소비주의 사회를 무심하게 그대로 반영했다면, 헬렌 프랑켄탈러는 작가의 깊은 심미적인 안목과 내면의 감성을 판화를 통해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Screen Shot 2025-10-24 at 12.57.30 PM.png <Yellow Jack> by Frankenthaler, 석판화. 76.2 × 96.52 cm. 1987년 작품


와...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프랑켄탈러 쪽이 훨씬 좋습니다. 앤디 워홀은 너무 유명해서 빼먹으면 안되는 거 아닐까 싶어 한 꼭지 쓰려고 했었는데, 이번 글 쓰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차피 피카소에 대해서도 포스팅 안했는데, 앤디 워홀 안할렵니다. 아무리 중요해도, 내 마음을 그닥 움직이지 않는 작가에 대해서는 지극 정성 내 귀한 시간을 들여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답니다. 어차피 다른 곳에도 정보는 넘쳐나니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미술 공부를 더 깊이 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이렇게 쓰면서, 과연 내가 좋아하는 예술은 어떤 것인가를 더 알아가게 되는 것이 즐거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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