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드디어 페기 구겐하임 얘기를 하기 딱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미국 현대 예술을 이야기 할 때에 빼 놓을 수 없는 그 유명하고 대단하신 잭슨 폴록을 발굴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예술계에 마케팅하고, 술에 취해 쩔어있는 그에게 작품 만들어 내라고 독촉도 하고, 그의 개인 전시회를 열어주고, 그의 작품을 열심히 팔아준! 페기 구겐하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잭슨 폴록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 라이프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대중 매체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된 잭슨 폴록과 그의 그림들의 이야기는 대강 이렇습니다: 천재 화가 잭슨 폴록이 혜성처럼 나타나, 이젤에 기대어 세워둔 캔버스에 붓으로 그린다는 전통적인 방식의 그림 제작법을 통째로 깨어버리는 예술을 한다 - 그는 커다란 캔버스 천을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서 춤을 추듯 전방위로 움직이며 액체 페인트를 흩뿌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작한다!
이렇게 완벽하게 새로운 "추상 표현주의"를 통해 드디어, 저 멀리 와이오밍주 출신의 자랑스러운 미국의 아들에 의해 미국의 예술이 전세계 예술의 최전방에 설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비운의 천재 예술가 이미지에 딱 걸맞게도, 무뚝뚝한 성격에 알콜중독자인데다 조울증 기미도 있어서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을 할 때도 잦았습니다. 화룡정점으로, 잭슨 폴록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44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으니, 이 어찌 쫀득쫀득한 이야깃감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위와 같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강렬한 움직임이 팍팍 전해지는 "액션 페인팅"의 정수가 느껴지시나요? 빨강, 검정, 하양의 극적 대비도 멋지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솔직히, '나도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네. 물론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버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실 다 창조성이 있으니까요. 두려워하는 마음만 없으면, 이렇게 하면 된다 안된다 하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린 늦었습니다. 그걸 처음에 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ㅎㅎ 우리가 이제와서 아무리 이걸 열심히 해 봤자, 잭슨 폴록을 따라한 그림이 될 뿐인 겁니다. 잭슨 폴록처럼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지난 포스트에서 토마스 벤튼이야기 할 때, 잭슨 폴록이 그의 제자였다고 한 거 기억하시죠?) 그간 주입받은 모든 아트의 통념을 깨고 뭔가 새로운 것을 내어 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도 그가 문을 활짝 열어제치자, 이런 것도 예술이 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게 된 거죠.
하지만 잭슨 폴록이 이런 드립 페인팅 - 액체 페인트를 흘리는 방식 - 을 처음 시도한 화가는 아닙니다. 잭슨은 1936년에 미국에서 열린 멕시코 화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로스의 실험적 미술 워크숍에서 액체 페인트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무엇보다도 잭슨보다 2년 앞서 드립 페인팅 기법으로 제작한 그림들을 전시한 여성 화가가 있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한 번 보세요.
위의 그림은, 2차 대전때 유럽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우크라이나 출신의 자넷 소벨Janet Sobel의 그림으로, 역시 페기 구겐하임이 자신의 갤러리 The Art of the Century에서 연 여성 작가들을 위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자넷 소벨은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16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바로 다음해에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기 때문에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미술을 배우던 그녀의 아들이 19살에 그림을 집어치우겠다고 할 때 그녀가 말리자, 아들은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하라'며 미술 도구들을 다 엄마에게 주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더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잭슨을 미술계에 떠오르는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 평론가 그린버그의 회고에 따르면, 잭슨은 그린버그와 함께 전시회에서 자넷 소벨의 그림을 봤습니다. 그린버그는 수년이 흘러 쓴 1955년의 글에서, 잭슨 폴록과 함께 "페기 구겐하임이 연 전시회에서 (브룩클린에 살고 있는 가정주부인) '원시적' 화가 자넷 소벨이 그린 이상한 그림을 한 두 점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넷 소벨을 팍팍 무시하는 톤이 느껴지지만, 잭슨 폴록이 위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겠죠?
물론, 잭슨 폴록은 드립 방식의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추상 표현주의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그가 페기 구겐하임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가로 6미터 길이의 <벽화>입니다.
벽 한면을 꽉 채울 커다란 화폭에 거침없이 휘갈긴 붓자국들이 보이시죠? 저런 그림이 사람 키보다 더 큰 캔버스에 6미터나 되는 길이로 펼쳐져 있는 것을 직접 보면 무슨 느낌일까요? 어떤 느낌이든지 여튼 되게 크게, 많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건 페기 구겐하임이 잭슨 폴록에게 직접 주문한 그림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집에 들일 벽화로 주문할 생각이었는데, 페기에게 항상 예술에 관한 조언을 주던 마르셸 뒤샹이, 나중에 다른 곳에 전시하기도 좋게 캔버스에 그리도록 주문하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죠.
그녀가 잭슨 폴록을 처음 선점한 것도, 그녀가 그의 그림을 보며 "이거 괜찮나요? 별로인 것 같은데..."라고 하자, 친구인 몬드리안이 "내가 보기엔 괜찮은 거 같아."라고 해서 작정하고 지원하기 시작한 거랍니다. 그녀의 다른 예술가 친구들도 폴록을 후원하라고 했다는군요. 그때부터 그녀는 잭슨 폴록과 전속 계약을 맺고 그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어가며 후원을 하고 그의 그림을 자신의 갤러리에서 팔았습니다. 그녀는 1943년부터 1947년에 베니스로 이주할 떄까지의 수년간 전적으로 폴록을 후원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폴록의 그림을 홍보하고 판매하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일했습니다. 그녀가 너무나 폴록애게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많은 에술가들이 그녀의 갤러리를 떠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대단한 여자, 페기 구겐하임은 누구일까요? 일단은 구겐하임이라는 엄청난 부자 가문에서 태어났구요, 어머니쪽 집안은 더더욱 부자였다고 합니다. 젊어서부터 아트 컬렉터로 유명했고, 뉴욕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다가 이탈리아의 베니스로 이주하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컬렉션을 모두 옮겨가서, 베니스의 구겐하임 컬렉션이 아주 유명하지요. 현재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녀의 삼촌 솔로몬 구겐하임이 세운 미술관인데, 페기는 죽으면서 자신의 컬렉션을 구겐하임 재단에 많이 기증했습니다.
페기는 어떻게 아트 컬렉터가 되었을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받은 유산으로 21살의 젊은 나이에 런던에서 모던 아트 갤러리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마르셀 뒤샹의 조언을 받아가며 여러 현대 예술가들을 발굴해 아주 성공적인 전시회들을 잇달아 열고 성공적으로 갤러리를 운영했지만, 재정적으로는 적자를 보았다고 해요.
유럽이 2차 세계대전에 막 진입할 무렵, 그녀는 갤러리 사업을 그만두고 미술관을 해 보겠다고 프랑스에 가서 그림을 빌려 올 계획을 합니다. 그런데 마침 파리의 예술가들은 독일 나치의 침입을 피해 프랑스 남부 또는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 바쁜 상황이었어요. 그림들을 평상시보다 싼 값에 쉽게 살 수 있었겠죠?
이때 페기는 피카소, 칸딘스키, 클레, 미로, 에른스트, 달리, 마그리트 등등 말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일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엄청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페기 본인도 유대인이므로 잘못해서 나치의 손에 걸리면 바로 유대인 수용소 행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한 일이므로, 상당한 용기와 배짱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지요.
이 때, 떠오르는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미국행을 도와주면서 (그 역시 유대인이었기에 얼른 프랑스를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그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죠. 그를 통해 뉴욕에 자리잡은 유럽 예술인들과 더욱 더 친밀하게 사귈 수 있었던 페기 구겐하임은, 정작 본인은 어떤 정규 예술 교육도 받은 적이 없지만 예술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목을 키우고 작품들을 사고 전시회를 열어, 현대 예술이라는 강의 물줄기 방향을 정하는 데에 아주 크게 기여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녀가 무명이나 다름 없던 잭슨 폴록을 콕 찍어 수년간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홍보를 해 주었으니, 페기 구겐하임이 없이 지금의 잭슨 폴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 다 때와 운을 잘 만나야 하는데, 잭슨 폴록은 마침 예술이 그런 파격을 필요로 할 때에 그런 그림을 그린데다가, 그걸 알아봐주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페기 구겐하임 같은 후원가이자 아트 딜러가 있었기 때문에 그만의 독특한 예술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폴록의 부인 리 크래스너도 화가였는데, 자신의 커리어는 뒤로 미루고 온전히 폴록을 도와주며 그의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그렇죠. 아무리 천재 화가라 하더라도 성공이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롯이 예술에만 짧은 생애를 바친 빈센트 반 고흐도 동생 테오가 그렇게 항상 후원을 해 주었기에 그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거고, 나중에 유명해진 것은 오로지 테오의 부인인 요한나가 미술 평론가들에게 구걸하다시피 반 고흐 그림의 평론을 요청하고 여러군데에 홍보를 하고 전시회를 열며 엄청나게 애를 쓴 덕분이잖아요. 그러고 보면 성공한 남자 뒤에는 여자가 있다는 말... 빈 말이 아닌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