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하트 벤튼
20세기 초중반의 뉴욕은 파리를 제치고 점점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되어갑니다. 예술계의 첨단에 있던 수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불안정한 유럽의 정치상황과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지요. 이제 뉴욕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개념예술, 추상화 등 새로운 사조들이 "모더니즘"의 주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지역주의(American Regionalism)라는 사실주의적 현대 미술 운동을 한 작가들이죠. 그들은 주로 미국 중서부와 남부의 농촌 및 중소도시의 현실적인 장면을 회화, 벽화, 석판화, 일러스트레이션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중 제가 소개하고 싶은 작가는 바로 토마스 하트 벤튼 Thomas Hart Benton입니다. 자 아래의 작품들을 보세요. 벤튼이 1930년에 의뢰를 받아 31년 초에 완성한 대작 벽화 <오늘의 미국>의 부분들입니다.
이게 미국의 모습이라고요? 용광로에서 쇳물이 끓고,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중공업 공장 현장에서 건장한 노동자들이 온몸의 힘을 실어 근육 노동을 하고 있네요. 와... 우리나라에게 다 죽어가는 미국의 조선 산업을 다시 살려내라고 부탁하는 요즘 미국의 모습이랑 정말 달라요!
위의 그림을 보시면, 왼쪽에는 도로를 건설하고 건물을 세우려는 건지, 측량 기사가 열심히 지표면을 측량 중이죠. 공중에는 최첨단 산업의 상징,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전면의 붉은 셔츠를 입은 남자는 용접공이에요. 불꽃을 튀기며 일을 하고 있네요. 공장들과 무쇠철근 구조물들이 보이는 배경에는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오염물질이라고 혐오의 대상이지만, 옛날에는 공장의 검은 굴뚝 연기가 "성장"과 "발전"의 동의어였겠죠. 이 와중에도 오른쪽 뒤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서부의 광활한 풍경도 보입니다. 묵직한 공장 엔진에 연결된 바퀴와 벨트도 쉼없이 돌아가네요.
오, 이 그림에는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더 많은 빌딩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철근들을 싣고 온 거대한 배에, 고층빌딩 건설에 필수인 크레인에, 근육질의 노동자들과 설계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건축가에... 모두가 정신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저는 벤튼이 미국이 젊었을 때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1920년대...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참사 위에 허우적대고, 이제는 영국을 제치고 미국이 정말 잘 나가기 시작하던 때. 왕성하게 성장하는 젊은 미국이었습니다. 솔직히 미국은 요즘... 좀 노망난 부자 할아버지가 돈 독이 더 올라 미쳐 날뛰는 것 같잖아요?
벤튼은 미국 중서부 미주리 주의 중요한 정치가문에서 태어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파리에서도 유학을 했고, 예술의 중심지 뉴욕에서도 살았으니 당시 유행하는 사조들을 물론 잘 알고 익혔지요. 하지만 1920년대 초에 그는 자신을 "모더니즘의 적"이라고 선언합니다. 벤튼은 미국 전역, 특히 중서부를 돌아다니며 자기가 본 미국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공의 예술인 벽화로 그려냅니다.
원래 뭐든지 어떤 트렌드가 막 융성하면 꼭 그 반대 운동이 일어나잖아요. 추상, 초현실주의 등 유럽에서 건너온 새로운 사조들이 정신없이 미국의 예술계에 충격을 주고 있을 때, 예술의 전통적인 기능인 현실의 '재현', 그것도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의 모습을 그리자! 파리와 뉴욕의 모더니즘 광풍에 저항하며, 순수하게 먹고 자고 즐기고 노동하는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자'는 "미국 지역주의"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운동처럼 말이죠.
미국 지역주의는 특히 1930년대에 유행을 했는데, 그 이유는 세계 대공황에 있습니다. 1929년 대공황으로 도시 산업화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농촌과 소박한 생활을 이상화하며 미국 정체성의 뿌리를 재발견하려 했거든요. 이것은 또한 정치적으로도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맞물려, 예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유럽의 미술에 견주어 미국적인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고 (국제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대도시와 달리 아직 '순수한') 미국 중서부 농촌과 도시민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에서 답을 찾았던 미국 지역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운동 자체의 발전 부족으로 인해 1940년대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 이후 세계의 중심이 뉴욕으로 이동하면서 미국 예술은 더 이상 지역적·농촌적 정체성에 머무르지 못했고, 이는 미국 지역주의의 쇠퇴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벤튼은 지역주의가 이미 트렌드에서 밀려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미국의 농촌과 자연을 그렸습니다. 위의 그림은 그리스 신화 “아켈로오스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미국의 중서부의 모습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소의 모습으로 변한 강물의 신을 청바지를 입은 헤라클레스가 제압하는 모습이네요. 뒷배경의 짙푸른 숲에서 벌목한 나무들이 전경에 도끼와 함께 널려있고요. 오른쪽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뿔과 여러가지 농산물들이 보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인데, 이렇게 고전적인 형식에 기댄 그림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지요. 세계의 중심지가 된 뉴욕의 예술계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눈을 뉴욕으로 돌려야 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유럽은 잿더미에 덮였고, 전후 미국의 엄청난 경제 성장 속에서 전세계 예술의 중심지는 이제 명실공히 뉴욕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벤튼의 제자가 바로 그 유명한 잭슨 폴록이랍니다! 다음 포스트는 아무래도... 잭슨 폴록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