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현대 미술의 초석을 놓은 예술사조들 중에 또 초현실주의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도 분명히 녹아 늘어진듯 축 처진 시계들의 요상한 이미지가 콱 박혀있을 거에요. 그게 초현실주의 그림이고 작가는 살바도르 달리라는 것도요. 역시, 우리의 미술 교과서에 나왔으니까요. :)
그런데, 아래의 참하고 범생이 같은 정물화가, 묘하게 괴이한 그림들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달리의 작품이라면 믿어지시나요?
대가들은 대부분 다 일단 기본기는 제대로 다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잖아요. 달리의 그림들도 초기 작품들부터 쭉 보면, 여러가지 화풍을 다 시도해 보고 이것저것 다 실험을 해 보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만의 화풍을 탁! 터뜨리더라고요. 아래 그림도 달리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죠?
점묘법, 표현주의, 입체파 화풍... 안 한 것 없이 다 했더라구요. 진짜 저렇게 열심히 한 사람들이 결국 일을 내는 거구나 싶어요. 고갱 그림이 생각나게 그린 것, 대놓고 마티스 풍을 풍자해 그린 그림, 피카소 따라 그리기 한 작품 등등. 또 진지한 초상화도 있고, 완전 입체감 없게 그린 것도 있고. 아주 사실적이게 그린 그림도 있고. 아래의 그림도 되게 의외죠?
그러던 그가 갑자기 변합니다. 1920년대 후반,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꿈과 잠재의식의 에로틱한 의미를 탐구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이고, 둘째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인간 무의식의 창조적 잠재력을 열어내고자 했던 예술가 집단인 초현실주의자들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자, 그래서 어떻게 변했는지, 아래의 작품을 보실까요?
오~ 이제 좀 뭔가 달리의 그림 같은 느낌이 나네요. 뭐 좀 이상한 느낌.. 이게 하얀 물결이 이는 바닷가의 회색 모래사장에 이상한 것들이 널려 있는 것인지, 평평한 회색 땅끝의 절벽 너머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 것인지. 게다가 손발이 비현실적으로 잘린 몸통의 모가지에서 나온 피구덩이, 잘려 늘어진 팔, 커다랗고 투명한 머리가 따로 떠돌고, 웬 난데없는 당나귀 시체...
달리는 “편집광적-비판적 방법(paranoiac-critical method)”이라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유도한 편집광적 상태에 들어가 작품을 창조했다고 하는군요. (음.. 약을 했나 싶기도 하지요?)
이 당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무의식에 가 닿는 것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합리적 통제를 우회하여 무의식 속에 숨겨진 생각, 욕망,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이 당시엔 듣도 보도 못하던 아주 참신한 시도였으니까요. 그래서 꿈과 비이성을 강조하고, 일상적인 사물과 개념을 기이하고 비논리적인 맥락 속에 배치하곤 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욕망, 열정, 성적 주제를 다루면서 상징적이거나 비전통적인 이미지들도 많이 활용했지요.
아니, 그런 설명들은 읽으면 그렇구나 이해는 잘 되는데, 막상 이렇게 이상한 그림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걸 떠올렸나 싶게 진짜 신기하죠? 별의별 걸 다 보고 사는 요즘의 우리 눈에도 신기한데, 1920년대에는 저게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진짜 약 한 거 아닐까...ㅎㅎ 찾아보면 아니라고 나오네요.)
그러다가 드디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래의 이 작품이 나오게 되는 거죠. <기억의 지속>
그의 그림들은, 비이성적이고 너무 이상하지만 정확하게 묘사되는 부분들은 또 너무 정밀하고 실제적이어서 더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근데 이분, 정말 그려도 너무 많이 그렸어요. 위키아트에 찾아보면 나오는 작품이 천 개도 넘습니다. 원래 달리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안 쓸려고 했는데, 그래도 초현실주의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가인 것 같아 이번 포스트에 선정을 했지요.
이 분이 변신의 달인이시라, 유명해져서 초상화 의뢰를 많이 받으셨는지 근사한 초상화 작품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나중에는 카톨릭으로 돌아가 종교화도 그리고, 또 추상화 작품들도 하고요. 진짜 안 한 거 없는 분이네요. 그림 뿐 아니라, 조각, 영화, 그래픽 아트, 애니메이션, 패션, 사진도 했고, 소설, 시, 자서전, 수필, 비평을 집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어요, 그쵸? 달리는 괴짜스럽고 과시적인 행동을 많이 해서 세간의 주목을 엄청나게 끌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을 보였다고 하네요. 흠.. 여러분들은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괴짜로 살고 싶으세요, 아니면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무난하게 살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