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 몬드리안
지난 포스트에서 브란쿠지의 작품들을 통해, 예술이 꼭 어떤 대상의 외형을 그대로 재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까지 법적인 원칙이 확립이 되었다고 했지요. 하지만 브란쿠지의 작품들도 사물의 본질을 재현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예술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되겠지요. 바로 어떤 대상의 재현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신 적 있죠? "몬드리안 = 차가운 추상" 이렇게 외워야 시험을 잘 볼 수 있었을 거에요. ㅎㅎ 아마 아래의 그림이었을 겁니다.
어린 마음에도 교과서에 실린 이 그림을 딱 보고는, 세상에 어쩜 이렇게 깔끔하고 디자인이 아름다울까... 정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눈에 보기 좋은 균형감에 톡톡 튀는 원색들까지, 누구의 눈에도 거슬릴법 하지 않은 이 멋진 디자인은 나중에 가구, 건축, 옷 디자인 등 여러가지 상업적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요.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입니다. 오, 모두가 사랑하는 반 고흐랑 동향이네요! 원래 이름은 Mondriaan이었지만, 나중에 파리로 건너가 다른 많은 화가들과 교류를 하며 네덜란드식 철자를 없애고 Mondrian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저렇게 멋진 스타일이 한방에 떡~! 나타난 것은 아니겠죠. 그 당시 화가라면 인상주의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으니 일단 인상주의 스타일을 먼저 배웠겠죠. 아래의 그림처럼 말이에요.
그렇지만 점점 더 표현주의 기법으로 발전해갑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의 색과 관계 없이 빨강과 파란색을 위주로 나무를 표현한 아래의 그림을 보세요.
구불구불 엉키고 설킨 붉고 검은 가지들에 파랑 바탕의 극한 대비 때문에 뭔가 광기가 느껴지네요. 그러면 이번엔 아래의 그림을 볼까요?
몬드리안은 당대 예술계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에서 다른 화가들과 교류하며 정말 충실하게 시대 사조를 다 통과합니다. 위의 그림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대상의 여려 단면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놓은 듯한 그림입니다. 점점 더 나무의 자연적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지요.
여기에다 두 가지의 사건이 더해지면서 몬드리안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갑니다.
첫째는, 신지학에 대해 알게되면서 신지학 협회에 가입한 것입니다. 신지학이란 간단히 말해, 모든 고대의 종교와 철학과 과학을 통합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자연의 신비와 영적인 진리 추구를 통한 인간 영성의 진화를 믿는 몬드리안은, 단순한 대상의 재현이 아닌, 보편적인 가치과 미를 표현하는 작품을 추구하게 됩니다.
둘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더 이상 파리에 있지 못하고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되면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고 있던 바트 폰 데어 레크와 같은 화가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몬드리안은 3원색을 사용하여 간결한 추상화를 제작하는 레크의 화풍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레크의 1917년 작품입니다.
어, 벌써 몬드리안 화풍의 원형이 여기서 보이지 않나요? 뭔가 힌트를 얻었네요. 그럼 1917년의 몬드리안 작품도 볼까요? 아래의 작품입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비슷한 성향의 화가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어 De Stijl (The Style)이란 잡지를 창간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위의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 조각보 생각이 나요. 몬드리안 작품이 조각보를 닮은 걸까요, 조각보가 몬드리안 작품을 닮은 걸까요? ㅎㅎ
몬드리안은 '보편적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조형 어휘를 세 가지 기본 색 (빨강, 파랑, 노랑), 세 가지 기본 명도 (검정, 흰색, 회색), 그리고 두 가지 기본 방향 (수평과 수직)으로 한정하기로 결정합니다. 그후 몇 십년간 계속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몬드리안 풍 작품들을 많이 그립니다.
말년에 뉴욕으로 이주한 몬드리안은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더 밀고 나아가, 뉴욕 시의 번쩍이는 도시 문화를 연상케하는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라는 유명한 작품도 남겼지요.
"예술은 현상보다 높으며 현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예술의 영성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되도록이면 현상을 참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상은 영성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상 예술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예술이 현상 위에 존재하지 않으면 예술은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 몬드리안
근데 재밌는 거는요, 몬드리안이 밖으로는 저렇게 말해놓고 추상화 작업을 계속 발표하면서도, 안으로는 평생에 걸쳐 혼자 수채화 꽃그림을 100점도 넘게 그렸다는군요. 특히 국화를 그렇게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아래의 멋진 국화 수채화를 좀 보세요.
몬드리안은 추상화만 그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름 꽃의 모습을 그리워해 수많은 꽃 수채화를 남겼다니 아주 흥미롭지 않아요? 역시 아름다운 대상을 모사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어쩔 수 없나봐요. 정말이지, 예술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