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낙엽
옷쟁이 시절은 나보다 앞서 가던 계절이었는데 이제 내가 더 앞서 가 계절을 기다린다.
느릿 걸음으로 오던 가을단풍이 하루 이틀 새 보란 듯이 곱디곱게 물들여 있다. 매일 손주와 함께 걷는 등원길도 더 곱고 가볍다. 예쁘다며 하나씩 주운 낙엽, 민준이 유치원 가방으로 쏙, 빨주노초 낙엽들이 옹기종이 들어있다.
함께 유치원 간다.
집으로 가는 길,
눈인사 한번 한적 없는 나무에게 단풍이 들고서야 모닝 인사를 건넸다.
등원시킨 이후부터 오후 네시 하원까지 서둘러야 한다.
이미 노란 단풍이 빨간 단풍이 익을 대로 익어 이리 쌓이고 저리 뒹군다. 벌써 가을 끝인가 싶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을 담은 숲 속 작은 못은
마치 멀리서 바라본 루이스레이크 빙하호수를 연상케 한다.
커다란 캔버스 같다.
오늘은 수능고사日,
친근한 팔공산이다.
갓바위로 향하는 수능 부모님의 발길이 가을단풍 걸음 관광객들보다 더 잦고 더 빨라 보인다.
나도 그랬다.
가을이 찾아와도 단풍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옷쟁이 시절에도, 재수생과 고3 수험생 아들딸을 둔 엄마로 살 때도 그랬다.
이 가을,
아직 단풍놀이 한번 못 간 자영업자들과 수험생 엄마들을 위해 영상으로 담아 왔다.
여백 / 자작시
발자국마다 단풍이 깃든다
담백함과 열등감이 아울여져 여백을 남긴다
아이를 다루듯,
단풍하나 요리 저리 돌려 잡고
조각난 구름 위로 올려 보냈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 여백을 토닥거려 주는 건,
어제 올려 보낸 낙엽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