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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색채

The Color of Life

by Andy Liu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아들의 전시회를 찾았다.


산업디자인 전공을 준비하는 아들이 그린 작품 중, “낯선 생일 (Strange Birthday)”이라는 제목의 작품하나가 눈에 띄었다.


작품 속 풍경은 한복을 입은 어린아이가 돌잔치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묘하게도, 그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사물들은 모두 한국의 돌잔치와는 맞지 않는 낯설은 것들 뿐 이었다.

중국식 다기(茶器), 훠궈, 병마용, 그리고 붉은 실루엣이 드리워진 홍등 등….


작품 해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원본 영문).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중국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때론 한국문화보단 중국문화가 더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중략)


돌상 위에는 한국 전통의 물건 대신 중국 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비춰지는 푸른 빛과 홍등의 붉은 빛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태극기를 연상케 합니다.


아이는 한복을 입고 있지만, 눈앞의 낯선 이국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들의 작품해설을 보며,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나 또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인생의 절반을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보냈다.


그래서일까, 계절이 바뀌거나 문득 어떤 사색에 잠길 때면, 그 시절 흥얼거리던 노래 한 구절, 혹은 그 때의 그 공기와 냄새가 불현듯 내 안 잠자고 있던 추억과 향수를 건드리곤 한다.


지금은 비록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지만,


어떤 날 어느 순간엔 문득 중국에서의 기억이 떠오르고, 또 어떤 날엔 그 시절 일본 노래의 한 소절이 사춘기 시절 뜨거운 첫사랑의 감정처럼 다시 내 마음 속을 스며들곤 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


그 모든 시간은 내 인생을 구성한 과정이자,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하나의 DNA와 같다.



내 아이들 역시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자라났다.


그들에게 중국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장소이고, 국제학교에서 공부한 탓에 그들의 모국어는 영어이며, 사고방식은 서양인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 또한 그들의 인생을 물들여 나갈 하나의 색채이기에,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나는 지금 이곳, 인도네시아의 삶에 만족한다.


비록 내 인생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고, 막막하며, 때로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들도 있지만


이 순간들 조차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라 믿는다.

성장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자, 또 다른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다시 모든 것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모든 시간은 결국 나의 인생을 이루는 고유한 색채들이다.


언젠가 내 인생의 팔레트 위에도


나만의 빛깔이 선명히 드러날 날이 오리라!


나는 그날을,

조용히 믿고 기다린다.



#나만의색채 #인생은결과가아닌과정 #나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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