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최근 오래전에 읽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를 떠올리며, 나의 소명(召命)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소설은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작은 어촌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85일째 되는 날 다시 바다로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부 어부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를 노골적으로 “불운한 노인”이라 부르며 조롱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와 사흘 밤낮의 고독한 사투를 벌인 끝에 그것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귀항(归港)의 길,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청새치의 살점은 모두 뜯겨 나가고,
항구에 도착했을 때 그의 곁에 남은 것은 거대한 뼈다귀 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다시 잃은 듯 보였지만,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소년 마놀린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불굴의 의지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감동받아 다시 그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노인과 바다』는 ‘지는 법을 배운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끝내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다.
청새치는 산티아고가 목숨 걸고 맞서야 했던 ‘세계’였고, 상어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운명과 평판, 그리고 삶이 주는 시련’이었다.
그 모든 것을 잃고도 그는,
‘남루한 돛대’라는 희망을 짊어진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다시 ‘사자 꿈’을 꾼다.
자신의 고유한 의지와 삶의 본능을 끝내 잃지 않은 존재로서 말이다.
나는 잠시 나의 20여년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안정적인 직장, 예측 가능한 내일,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보수.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잘 살고 있다”라는 안위 대신, “살아 있다” 라는 감각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음을 부정 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은 실패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 머무는 것이 더 두려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자의반 타의반,
이미 익숙해 져버린 나의 Comfort Zone을 떠나, 모든 것이 아직 미숙하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이 곳 미지의 땅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나의 소명에 맞는 길을 찾으려 하고있다.
소명이란,
소설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와 같이,
남들이 인정하는 승리를 쟁취하는 일이 아닌, 자기 자신이 끝내 부정하지 않는 자기만의 승리를 살아내는 일은 아닐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후회하기보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타고난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삶.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0년의 직장생활은
어쩌면 진정한 나의 소명으로 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은 아니었는지.
무엇을 잘 하는가, 무엇이 돈이 되는가를 묻는 삶보다,
내가 끝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
그것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그리고 결국 내가 닿고 싶은 지점이 어디인지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삶.
속도와 결과보다,
‘나답게’ 살아가는 방향을 스스로 깨닫고 배워나가는 과정.
아마도 나는 그 과정을, 이제서야 제대로 걷기 시작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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