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학교도서관도 싫고 PC방은 더욱 싫다. 어디 시립도서관 PC실에 가서 잠깐 확인하면 된다. 인태는 핸드폰을 끄고 백팩 하나를 매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낙엽들이 불편한데, 누군가 뒤에서 팔짱을 끼며 말한다. “오늘 하루 휴가 냈어. 커피 마시러 가자. 샌드위치 맛있게 하는데 알아. 사람도 별로 없고.” 세진의 샴푸냄새가 향긋하다.
자리를 잡자마자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법무부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생각보다 인터넷 연결이 빠르다. 주문하러 가던 세진이 멈춰 섰고 인태는 웃으며 세진에게 노트북을 건넨다. 세진이 빠르게 마우스 휠을 돌리는데 인태가 말한다.
“똑같아”
“응?”
“미안해, 작년하고 똑같아”
인태가 노트북을 덮으려는데 세진이 자기 쪽으로 더 끌어당기며 천천히 살펴본다.
“합격자수가 작년보다 훨씬 줄어들었네. 오빠, 그러지 말고……”
인태는 가방에서 사자인형 자물쇠를 꺼냈다. 언젠가 세진이 사물함 자물쇠로 쓰라면서 준 것이다. 한쪽엔 붉은색 하트가 그려져 있고 반대편엔 아기사자 문양이 붙어있는 자물쇠. 나름 튼튼하지만 애들 장난감 같아 그냥 가방에 넣어 두었다. 세진은 가끔 꺼내달라고 한 뒤 쓰담쓰담하고는 도로 건네주며 좋아하곤 했다. 어느새 부적같이 되어버린 자물쇠. 그 부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사물함 쓸 일 없어.”
“학교 사물함을 왜 써. 미안해. 내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너무 안일하게……”
“이제 공부 안 해, 그러니까 가져가”
세진이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는 돌아와 앉는다.
“공부 그만두는 거하고 이거 돌려주는 거하고는 무슨 상관인데”
인태가 한동안 말없이 세진의 눈을 쳐다보다 말한다.
“필요 없으니까”
“뭐라고?”
“필요 없다고”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세진이 말한다.
“기분 안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오빠”
“필요 없어져서 필요 없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가져가라고”
인태가 자물쇠를 세진에게 들이민다. 테이블과 자물쇠의 철이 끌리는 소리가 귀를 긁는다.
“싫어”
인태는 말없이 가방을 챙긴다.
“싫다는데 왜 자꾸 그러는데.”
노트북을 덮고 자물쇠와 같이 세진 쪽으로 들이민다.
“그냥 버려, 버려버리라고, 버리면 되잖아!”
세진이 들고 있던 진동벨을 탁자 위에 던져놓는다.
만난 지 3년 만에 처음 듣는 소리였다. 너무 짜증 나고 화도 나고 그래서 그냥 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몇 분이 지나도 말이 없다. 말을 붙일 수도 없는 상황인데, 진동벨이 울리고 세진이 일어선다.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를 가져온다.
“이거 먹으러 온 거잖아. 맛있어. 드셔봐”
인태가 다시 자물쇠를 민다.
“받아”
“먹고 말하자. 응? 아침도 안 먹었잖아”
“일단 받아, 받아봐”
세진은 살짝 미간을 찡그린다. 망설이다가 자물쇠를 손에 든다.
인태가 가방에서 뭔가를 하나 더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조금 더 큰 자물쇠다. 초록색 하트모양이 반짝인다.
“올려놔봐”
“응?”
“손에 들고 있는 거 이 위에 올려보라고.”
세진이 가까이 대자, 손 안의 붉은 자물쇠가 아빠 등에 달라붙는 아이처럼 튀어나간다. “착” 소리에 살짝 놀랐다. 달라붙은 자물쇠는 떨어질 줄 모른다. “착, 착, 착” 몇 번을 떼었다 대도 꼭 달라붙는다. 큰 자물쇠 위에 포개진 작은 자물쇠. 바닥의 냉기가 차단되니 계속 따뜻하다.
인태가 벌떡 일어서더니 뒤돌아서 세진 앞에 쭈그려 앉는다.
“업어줄까?”
“그럴까?”
세진이 점프하듯 인태의 등 위에 올라탄다.
한산한 커피숍. 인태가 세진을 업고 실내를 한 바퀴 돈다.
“몇 번 더 업어줄 거지?”
“몇 번이나 더 해줄까”
“한 열 번, 아니 내 생일 때만”
“업어줄게, 평생”
시험에 붙었어도 이렇게 좋아했을까. 자물쇠 두 개는 계속 포개진 채 인태의 가방에서 세진의 가방으로 옮겨졌다. 샌드위치나 커피는 인태가 다 먹어버렸다.
두 달 뒤 입사했다. 주식회사 마운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