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내미 이 복 희
Dec 31. 2023
얼굴을 비비다
이복희
저 얼굴이 돌아오는 날은 언제일까
전생에서 현생까지 천년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목숨을 얹지 못하고
몸통밖에 남지 않은 육신이라니
호젓한 박물관 마당 한쪽
팔다리 머리까지 떨어져 나간
목 없는 불상
불구의 몸을 놓아주지 않고
관광객들 야단법석이다
캄캄한 바위 속에서 면벽 수행했던가
모래 더미에 파묻혀 참선했다던가
보로두브르 불탑*의 인연들이 바람결에 실려 온다
목 없는 불상 하나
오른팔 잘린 알몸을 뒤튼다
바윗덩이와 한목숨이었던 그때,
묵직한 징 소리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늘빛이 타올라 불구덩이가 됐다던가
잿더미에 덮인 채 천년 세월 흘렀으니
이쪽 세상의 눈과 머리와 팔다리가 몰려온다
목 위의 형상은 지워졌으나
생의 기간은 열려있으니
보아라, 수많은 발걸음 머리 숙이고
얼굴 없는 얼굴에 얼굴을 비빈다
그때, 바람 한 줄기
땀 젖은 이마를 적시며 지나가는데
*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 있는 세계적인 불교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