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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내미 이 복 희 Jan 04. 2024

호박論

호박論

 

이복희

 

내가 들 구덩이 내가 판다

배꼽 안쪽
꽃 떨어진 자리는 이윽고 저승

칼날을 대고 보니
갈라진 호박 속의 씨앗들
오래 쌓아둔 씨앗의 書架가 있다


이제 몸통을 발라낼 차례
육질은 한소끔 끓여내고

아랫목 장판지 위에 늘어놓은
씨앗의 행간을 읽는다

한 줌 호박씨 입안에 털어 넣고
미리 맛보는 이승의 맛이 슴슴하다

썩은 몸에서
몇 알의 씨를 발겨
땅속에 다시 돌려보내는

내가 판 구덩이 속
내가 가만히 들어앉는 일



2023. 12. 14.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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