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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내미 이 복 희 Jan 16. 2024

한 사람이 엎질러졌다

한 사람이 엎질러졌다

 

이복희

 

항아리에 간장 붓던 사람이 엎질러졌다

언제나 퍼주기에 급급해 바닥 드러난
어머니, 먼지 풀풀 날리는
콩밭을 떠난 지 열두 해

당신이 앉았던 자리마다
흉터처럼
둥그렇게 엉치뼈 찍혀있다

꾸지람 피해 숨어들었다가
엉덩이에 봉숭아 꽃물 들던 장독대
콧잔등 찡그리게 했던
간장 달이는 냄새, 어디에도 없다

검은 달빛만 가라앉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머니의 애간장
소리 없는 얼룩은 어둠으로 숙성 중이다

하얀 소금꽃 피어오른 항아리에서
많이 본 듯한 실금을 발견했다

어머니 허리춤 동여매듯
굵은 철삿줄을 항아리에 겹겹이 두른다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명치, 간장 맛 밴
한 사람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


-『시에티카』 제28호(2023년 상반기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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