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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거미집
by
보내미 이 복 희
Apr 25. 2024
오래된 거미집
이복희
창틀마다 물방울들 매달려 있어도
자식 없는 빈집일 뿐이다
세공사 손길이 다녀간 거미줄에
뭇별들을 걸어 두고서야
밤하늘에 지은 집은 완전한 집이 된다
꽁무니에서 흘러나온 초능력
네트워크를 이루는데 한 치 어긋남이 없다
직선이 난무하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
자신의 집은 지을 줄 몰랐고
찢기거나 뒤엉킨 그물을 밤마다 수선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
거칠어진 어머니 무릎 서로 베겠다고.
실랑이 벌이다 잠든 남매들 머리맡,
얼룩진 벽만 바라보다 떠난 아버지
눈치 싸움에 익숙해진 남매들은
다투는 일에 급급하다 그만,
잡아놓은 먹이조차 놓치곤 했다
줄줄이 매달렸던 물방울들
도시 속으로 모두 떠나고
빈집에서 홀로 생을 탕진한 늙은 거미
몸으로 쓴 시를 허공에 내다 걸고 있다
_시집 『오래된 거미집』 (모악, 2022)
https://youtu.be/WqCArocDPm4?si=k8t1QIB869RsPd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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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거미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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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문학시대 수필 신인상, 2022년 계간[시에 ] 시신인상 시집[오래된 거미집]모악출판사 공저[바람집을 썰다]외 다수. 한국본격수필가협회,현대불교문학회원,시공간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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