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내미 이 복 희
Jun 16. 2024
혀
이복희
꽃에도 얼굴이 있다면, 그건 창문의 일종
밤의 창문을 닫아걸자
메마른 입안에 퍼지는 열꽃
내 이로 혀를 씹고 만다
이것은 통증으로 통하는 맛
장맛비에도
우두커니 애인처럼 서있는
배롱나무꽃은 흔들리지 않는 향기
겁 없이 뜨거운 맛을 보고 싶은 날
시뻘겋게 엉겨 붙은 혓바늘들
그 깊이에 혀를 대고 살다 보면
혀의 뿌리가 깊어져서
말의 상처가 돋아난다
혀는 자꾸 뒤틀리고 꼬부라지고
내가 아닌 내가 되는데
나는 혀 끝 따라 흔들리는 꽃나무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창문 열고 못다 비운 비밀을
배롱나무 뿌리 곁에 심어놓는다
2024년[불교와 문학]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