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고 어디로 가라고요?? 저~어기 지방 구석으로요?
L사에 처음 취업 했을 때, 나름 인정받았던 것 같다.
문과생의 강점인 영어 점수를 한 껏 높여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를 들이밀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학벌도 지방 국립대에 전공도 문과여서 큰 메리트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제약영업이 여전히 3D로 여겨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와중에서는 나름 경쟁력이 있었던 것 같다.
또 운이 좋게도 당시 신제품을 론칭하는 팀이었고 당연히 종합병원에서 시작을 해야 했다. 이런 여러 행운(?)으로 말미암아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을 담당할 수 있었다. 물론 소위 빅 5라고 불리는 아산병원, 삼성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성모병원은 몇 년이상 경력을 갖고 입사하신 노련한 형님, 누님들의 차지였다.
어쨌든 시작은 서울에서 나름 종합병원으로 순탄하게 시작을 했으나, 문제는 이직을 하면서 발생했다.
운이 없게도 이미 나의 입사 기수 1년 전에 선배들을 대규모로 공채로 뽑았고, 그들이 대부분 종합병원과 주요 수도권을 모두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들에게 남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부 병원들과 대부분 지방발령이라는 길 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제약영업 전반에 대해서는 인식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국적 사들은 Clean 한 영업을 지향하고 (즉 과도한 접대나 리베이트 등이 없고), 연봉이 꽤 높았기 때문에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대거 지원을 했었다.
내가 지원했던 공채는 거의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1:4, 즉 전체 중 20%만이 남성이었다. 꽤나 센세이셔널한 상황이었고,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서류에서는 비슷하게 통과를 했지만 면접에서 워낙 남성들이 말을 잘 못해서(?) 아무리 가산점을 줘도 어쩔 수 없이 여성합격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성들 이어 면접 연습을 많이 하자!!
결과적으로 남자 동기들 중 단 1명만이 서울에 남게 되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 한 명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연수원에서 시험성적이 가장 좋았던 1명이었다. 이제 왜 연수원에서의 성적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약대 출신들이 상위권을 차지했고, 기타 이과(이지만 시험 점수가 좋지 않았던), 문과 등등을 전공한 친구들은 안 좋은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남녀 차별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서울이 연고였던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고 특히 일부 여직원들의 경우 지방 발령을 내면 집단 퇴사하겠다고 들고일어나기도 했다. 남녀 차별을 하려는 건 아니고, 실제로 그랬다는 얘기다.
사실 충분히 이해는 간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던 사람을 연고 하나 없는 지방으로 발령내면 과연 누가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뭐 난 딸이 없지만, 만약 내 딸이라고 하면 그냥 그만두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경향성이 있고 추가로 여성에 대한 배려로 인해, 지방에 발령받을 예정이었던 많은 여성 신입사원 분들 중 상당수는 서울, 경기도, 아무리 멀어도 충청도 정도에 배치가 되었고. 남성 신입사원들의 대부분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안동, 진주, 광주, 목포, 전주 등 전국 방방 곡곡으로 골고루 퍼졌다.
물론 3-4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다 rotation 되어서 처음에 지방 갔던 남자직원들은 수도권으로 올라오고, 처음에 가지 않았던 직원들은 나중에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때 그만둔 친구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뭐 결국 조삼모사다.
당연히 나도 지방으로 발령 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때 공부 더 열심히 할 걸 후회가 막심하다.. 처음에는 회사를 나가란 건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그럼 만약 지금 취업준비생 분들이 합격을 했는데 지방으로 발령을 낸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 20년 전이었고, 지금의 MZ 세대는 그런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하튼 일가친척, 친구하나 없는 지방의 한 소도시로 발령이 났었고 한 3년 정도 아주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의 연고지를 떠나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주거이다. 다행히 당시에 회사에서 연고지가 아닌 곳으로 발령을 받는 경우 3천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이자로 대출을 해줬다. 당시만 해도 집값이 지금처럼 극악은 아니었으므로, 지방 소도시에서 3천만 원이면 20평대 초반의 작은 30년 된 아파트를 전세로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돈 조금 더해서 좀 더 깨끗한 곳으로 갔을 것 같다. 너무 외지고 낡은 곳은 안전상의 문제도 있고, 온수도 잘 안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이 안락해야 안 그래도 혼자 하는 타지 생활에 위안이 된다.
그리고 집주인도 잘 확인을 해보자. 집주인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칫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난 전세계약이 끝난 후에도 거의 6개월이 넘게 돈을 받지 못했다. 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셨는데, 나에게 3천만 원에 주었던 전세금을 돌려주려면 적절한 가격에 집을 내놓아야 하는데 정말 오래된 귀신 나올 것 같은 그 집을 더 비싸게 내놓으려고만 했으니 거래가 될 리가 없었고 돈 없으니 전세 나갈 때까지 줄 수 없다고 버텼었다. 소송하려면 하라는 식으로 배째라 하는데 당해낼 방안이 없었다. 그렇지만 집의 물건들을 다 빼서 이사 가면 나중에 그 집에 누군가 또 들어와서 살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짐을 두고 새로 이사 간 곳과 두 집 살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받는 게 , 그 오래된 집의 보일러가 고장 난 것도 내 탓이오, 변기 물이 잘 안 내려가는 것도 내 탓이오, 하다못해 수도꼭지가 닳았다는 것도 내 탓이니 다 교체해 주라는 식이었다. 당시에 중개를 하던 부동산업체에서도 어이가 없어했는데 결국 참다 참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막판에 잔금을 받은 후에 면전에다가 대고 그렇게 살지 마시라고 한 마디하고 나왔다. 나이 드신 분께 그러면 안 되지만 그동안 당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최소한의 복수였다. 그래서 부동산 계약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고 이후에 집을 얻거나 할 때는 더욱 세부 항목들을 꼼꼼하게 검토해보는 습관이 생겼다.특히 애완동물, 주요 물건들이 손상됐을 때 책임 소재 등. 그런 측면에서 부동산업체는 참.. 쉽게 돈을 번다. 나름의 어려움은 있겠으나, 최근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을 때 1건만 성사시켜도 수천만원의 수수료라니..
그래서 살면서 의사, 변호사, 회계사 친구 혹은 가까운 지인은 한 명씩 만들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도 많은 회사들에게 연고가 아닌 지역으로 발령을 내년 경우 주거안정을 위한 대출이나, 가족상봉비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일정금액이 지급되기도 한다. 물론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게 어디인가. 그것도 아끼면 다 돈이 된다.
다행히 이사는 좀 쉬웠다. 서울에서 겨우 8개월, 그리고 원룸에서 있었던 만큼 짐이랄 게 별로 없었다. 처음 원룸을 얻을 때 샀던 중고 냉장고 세탁기는 다시 중고로 팔아버리고, 이불이랑 컴퓨터, 책상 등 일부 짐들만 1톤으로 하나 빌려서 이사를 마쳤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자취 등을 위해 집을 얻을 때 가전제품 등은 정말 중고로 최소한의 것들만 장만하길 권장한다. 처음 독립이라고 해서 쓸데없이 목돈 들여 좋은 제품들 사는 건 불필요하다.
지방은 외로웠다. 생전 처음 가본 도시에서 살아야 하니, 가족, 친구도 하나 없고 워낙 외진 곳에 발령 나서 주재사원으로 있다 보니 매니저도 거의 오지 않았다. 당시 그분도 서울에서 발령받은 분이셨고, 심지어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기러기를 하고 계셨으니 고충은 더 많으셨으리라. 그나마 광역시 정도였다면 사무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여러 동료들과 얼굴도 보고 시간을 가질 수 있겠으나, 홀로 덩그러니 주재생활을 하는 건 참으로 외롭고 쓸쓸한 일이었다. 비록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의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거의 신입사원이나 마찬가지였고 홀로 좌충우돌하면서 일을 했다.
연고가 없으니 힘들어도 의지할 곳도 없고, 여유 시간이 있어도 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 같은 지역에 나처럼 다른 지역이 연고인 분 한 분 어르신(?) 께서 주재하고 계셔서 가끔 논의를 드리곤 했다. 다만, 좀 독특한 분이기도 하시고 어려운 분이라 또 다른 매니저를 모시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지방에서 버텨냈다. 3년 간혼자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과 그럼 과연 언제쯤 다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지, 그리고 지방색이 강하여 나처럼 타지에서 온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실적을 만들어야 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고민을 통해 사람이 성숙해질 수 있는 시기였다. 마치 군대를 갔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 꼭 혼자 지방에서 주재생활을 하는 것이 나쁘기만 할까? 그건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의외로 재밌고 또 유익한 일들도 많이 있다. 만약 지금 다시 지방발령이 난다면 (본사 근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난 정말로 재밌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장점들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