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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제약회사 신입 영업사원 두 번째

8개월 만의 첫 이직에 성공하다 그런데??

by 러블리 이지


그렇게도 바랬던 취업 이후 월급을 딱 8번 받았을 뿐인데, 그 당시에는 무슨 그리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신제품을 론치 하는 팀에 입사해서 달랑 8개월 만에 신입 사원 주제에 제품과 팀의 미래(?)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다가 결국 퇴사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주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었기에 갈 곳은 마련해 놓고 퇴사를 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스카우트와 비슷한 걸 당했다.

나랑 같이 지역구에서 경쟁하던 경쟁사 직원분이 나를 잘 봤던 건지 아니면 자꾸 시장을 뺏기니 꼴 보기 싫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주변에 알음알음 알아보니 내가 다니던 곳보다 더 큰 회사였고 돈도 더 많이 주는 곳이었다. 무려(?) 연봉이 300만 원 이상 차이 났고 추가로 활동비도 하루에 2만 원을 기존 회사보다 추가로 주는 곳이었다. 심지어 제품도 달랑 1개가 아니라 3개였다. 회사의 네임밸류도 더 높고..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최근 대부분의 다국적 회사들은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다. 대규모 공채로 수십 명씩 채용했던 건 이미 저 멀리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보기 위해 국내 제약회사에서 5년 정도 경력은 쌓은 한창 일할 나이의 하이퍼포머들을 경력직으로 채용한다. 그런 이유로 다국적회사 영업직에 오고 싶은 경우 대부분 국내 제약회사에서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고, 그걸 바탕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과정에서 같은 지역구의 다국적사 직원이 추천해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비록 경쟁사, 혹은 비록 나랑 아주 관련이 있는 회사가 아니더라도 병원에서 두루두루 친해두면 이직의 기회가 생긴다. 물론 일을 잘했을 때의 얘기다.

때로는 병원에서 주요 고객인 교수들이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평소에 눈여겨보던 직원을 다른 회사의 매니저들에게 추천해 줘서 취업에 성공하는 케이스들을 주위에서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이직을 결정했을 때 나의 마음은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고, 그리고 내가 일궈놓은 거래처들 (지금 생각하면 별 의미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직하는 분들 그 지역에서 영원히 있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면 과감하게 털고 움직이자.), 마지막으로 매니저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매니저는 가깝고도 먼 사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며칠을 고민하고 술도 마시고 조언도 구하고, 그렇게 1-2주 정도를 고민하다가 사표를 던진 후 1달간의 인수인계를 거쳐 이직했다. 8개월의 경력직이지만 그냥 신입으로 지원했다. 물론 이력서를 보니 짧지만 다른 제약회사, 종합병원을 담당했던 경력이 있어서 면접에서 오히려 다른 완전 신입보다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웃긴 것이 경쟁제품에 대해서 이것저것 내부 정보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순진(?) 하게 다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면접이라는 형태로 영업 비밀을 캐려고 했던 것 같아 상도가 좀 아니지 않나 싶긴 하지만, 이미 20년 전 얘기이므로 넘어가자. 그 당시 면접 봤던 분들은 이미 다 정년퇴직하고 이제는 손자, 손녀랑 놀아주는 호호할아버지가 되었다.


확실히 큰 회사이다 보니 함께 입사하는 공채 동기들도 많고 교육도 좀 더 체계적이었다. 물론 훨씬 타이트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교육 후 다음 날 시험을 매일 보는데,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하면 그다음 날에는 그 전날 시험 & 커트라인에 못 미친 시험문제를 계속 누적해서 보는 것이었다. 하루 망치면 그다음 날은 시험 범위가 두 배가 되고, 또 하루 망치면 세배가 된다. 결국 남자 동기 중 하나는 서너 개의 시험을 동시에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다 큰 남자가 왜 눈물이냐고? 시험 너무 못 보면 연수원에서 탈락시킬 수도 있다고 반 협박(?)을 했으니.. 자칫하면 입사하자마자 잘릴 판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녀석은 지금도 같은 회사에서 매니저로 잘 다니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다.


그래서 지금도 취업준비생들에게 조언을 줄 때, 회사에 입사하여 연수원에 가게 되거나 교육을 받게 되면 시험은 무조건 잘 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단순히 시험을 잘 봐서 좋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고 제품이나, 지역 등에 대해 우선순위를 주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가장 잘하는 직원에게 선택권을 우선 주는 어쩌면 당연하다.


제대모에서 가끔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주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중 나의 조언에 따라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은 다행히 열심히 교육을 듣고 공부했고, 동기중 1등을 한 사람은 회사에서 원하는 지역, 제품에 대한 선택권을 줬다. 그래서 신입사원이지만 종합병원에서 항암제를 담당하는 친구도 있다.


난 문과생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의학정보에 대한 습득에 있어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못할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초반에는 더 많은 노력을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물론 약대생이나 생명공학과 등 정말 시작부터 앞서가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연수원은 예선전이라고 생각하자. 본 게임은 필드에 나와서부터니까.


그렇게 해서 난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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