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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제약회사 신입 영업사원 첫 번째

입사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by 러블리 이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처음 사회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특히 나처럼 지방에서 갓 서울로 올라온 촌뜨기에게 서울이라는 곳은 (비록 기억도 안 나던 어린 시절에 잠깐 살았다고 부모님께서 말씀은 하셨지만.. ) 참으로 복잡하고 비싼 곳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종이로 된 지도책을 들고 다녀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원래 서울 살다가 서울에 있는 지역으로 취업하거나, 지방에서 지방에 취업을 하면 상대적으로 고민이 덜해진다. 그리고 서울에 살다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도 다행히(?)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집값과 물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조금 덜하다. 물론 외로움이라는 적과 싸워야 하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나는 당장 살 곳이 필요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왔는데 회사를 다니려면 돈이 필요했다. 급한 대로 부모님께 3천만 원을 빌려 아주 작은 원룸 전세 하나를 구했다. 주변이 공장지대라 냄새도 매캐하고 골목길에는 불법주차와 트럭들이 오가서 운전하기도 어려웠다. 아.. 영업을 위해서 차도 사야 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높아서 정말 오래 다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집도 구해야 하고, 차도 사야 하고, 영업을 하려면 양복도 몇 벌 사야 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백화점 가서 좋은 양복을 샀으나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다. 소위 작업복이 되는 양복은 아웃렛에서 비슷하고 무난한 걸로 여러 벌 사고, 특히 바지는 금방 닳기 때문에 한 벌당 꼭 두 벌씩 사야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본인 사이즈를 정확히 안다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이게 제일 경제적이다. 쿠팡 같은 곳은 무료 배송, 반품도 하니 여러 벌 사서 입어본 후에 나머지는 싹 반품해 버리면 되니 세상 편해졌음을 느낀다. 과거에는 맨날 오프라인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던 걸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차는 중고차면 충분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동차는 돈을 버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비용일 뿐이다. 감가상각도 빠르고 보험에 기타 유지비용 등등 차에 따른 부대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니 최소한의 것으로 장만하고, 나중에 연차가 올라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그때 바꾸면 충분하다. 특히 남성들이 차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인데, 감가상각과 유지비를 생각하면 외제차를 산다는 것은 돈을 모으지 않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판촉물도 별로 없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영업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차는 정말 최대한 안 살 수 있으면 안 사고 버티는 게 좋고, 어쩔 수 없이 산다면 최소한의 것을 사는 게 맞다. 난 지금도 10년이 넘은 차량을 타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제약회사 영업직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취업준비생들 중에 가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영업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가능하다. 다만 본질적인 나의 성격과 다른 나를 연기해야 하니 스트레스를 조금 남들보다 더 받을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환경에 따라 적응해 가고 나만의 노하우도 생긴다. 예전과는 달리 술을 못 마시는 영업사원들도 많다. 대신 다른 강점이 있어야겠지만, 그래도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내가 딱 그렇다. 술도 잘 못 마시고, ISTJ 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면 굉장히 피곤하다.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한 사람이며, 연휴 때마다 따뜻한 동남아 호텔의 선배드에서 책을 읽는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첫 번째 회사는 결국 8개월 만에 퇴사했다. 퇴사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업에 무슨 재미를 따지냐고 하겠지만 재미가 없는 건 없는 거였다. (내가 재미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가장 큰 이유는 담당하는 제품이 1개뿐이라는 것이었다. 제약회사는 일반 보험이나 자동차 영업과 다르게 고정된 일정 수의 고객을 반복해서 만난다. 그런데 제품 1개를 가지고 1주일에 1~2번 같은 고객을 만나다 보니 친분은 금방 쌓였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 1개의 제품에 이렇게 많은 사람 (당시 해당 팀은 약 40여 명이었다)을 투입해서 과연 언제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시장은 뻔히 정해져 있는데 만약 성장의 끝에 다다르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 미래가 어두워 보였다. 그래서 이직이라는 것을 처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주제에 벌써부터 이직을 생각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연봉이나 조건보다는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회사는 제품의 상황에 따라 인력을 운용을 탄력적으로 하기 때문에 신제품을 론치 하는 시점에 많은 인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서 초기에 시장을 선점하고 점차적으로 다른 제품들로 인력을 이동시키는 전략을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신입사원일 뿐인 나로서는 이러다가 자리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과도한 두려움뿐이었다.


퇴사에도 매너가 있어야 한다. 처음에 당시 매니저인 영업지점장님께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한동안 내 전화를 피하셨다. 새로운 팀을 꾸려서 열심히 해보려는데 신입 중 하나가 몇 달 만에 퇴사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싫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술도 마시고 다른 선배님들에게 주정(?) 도 피우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왕 퇴사를 결심하면 차분하게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최대한 인수인계를 잘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매너일 것이리라.


그렇게 첫 번째 회사를 8개월 만에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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