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 박대성 화백
2년 전, 롯데월드몰에 전시된 대형 그림 아래는 페인트 통과 붓이 설치되어 있었다. 데이트를 하던 젊은이들은 뜻밖에 만난 체험마당에서 그려보고 싶었다. 여자 친구가 푸른 물감이 묻은 색 붓을 들고 그림 위에 덧칠을 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여기 그려도 되나 봐.”
“우리도 한 번 그려 볼까?”
“그래, 여기 가운데 네가 먼저 그려봐.”
5억 원 가치를 가진 그림 위에 위대한 낙서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낙서는 먼 데서 보면 마치 세 사람이 비 오는 길에서 발레를 추는 듯한 타로 카드 속의 춤추는 사람들 같이 보였다.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네요.) 당연히 원작가 존원Jon One은 복원을 요청했고, 전시 기획사는 작품 복원에만 수천만 원의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젊은이들이 그림을 보러 왔다가 벌어진 일로 둘 사이에 금이 가게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다행히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이 났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솔거 미술관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박대성 화백의 특별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하다>.
전시에 구경 온 아이들은 신이 났다. 넓은 전시실은 뛰어다니기 좋았고 길게 늘어놓은 작품은 멋진 양탄자 같았다. 아이들에게 작품에 손대거나 그 위에서 놀면 안 된다고 안내하는 사람은 없었다. 족자에는 관람객이 보기 쉽도록 안전선을 설치하지 않았다.
20미터가 넘는 족자는 알라딘의 양탄자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글자를 만지고 작품 위에 올라타 양탄자를 타는 시늉을 하면서 드러눕기도 했다. 뛰어다니고 구르고 무릎으로 작품에 올라가서 발자국을 남기고 무릎으로 글자를 짓이겼다. 아이들을 뒤늦게 따라온 아버지는 그런 아이들 사진을 찍어줬다.
그것은 동양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의 김생 글씨를 모사한 임서 작품이었다. 작품가격이 1억 원이 넘는 <지서 김생 임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는 박화백에게 여러 차례 사과를 했고 작품을 훼손한 일로 혼란에 빠졌다. 정작 그 일을 안 작가는 허허 웃었다.
"그래. 그게 아이들이지 뭐, 답이 있나. 우리 애들도 그래. 애들이 뭘 압니까. 어른이 조심해야지.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다고 그랬어. 자국이 남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하나의 역사니까 놔둬야지. 복원도 할 수 있는데 그럴 생각은 없어."
"다시 살펴보니 어린아이의 눈에는 미끄럼틀처럼 보이기도 하겠다. 어린아이가 미술관에서 나쁜 기억을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사람끼리 굳이 원수 지고 살 필요가 없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 작품을 210만 명이 넘게 봤을까? 그 아이는 봉황이다. 봉황이 지나간 자리에 발자국 정도는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노 화가는 손주들이 벌인 일처럼 넘어갔다. 어른들이 잘해야지. 그 한마디 침을 놓고 허허 웃는 노 화백의 인품이 세상에 빛나는 순간이었다. 공들여 쓴 글씨가 뭉개지고 발자국이 찍히고 훼손되었는데도 그것도 역사라고 놔두라는 그의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소산 선생은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박화백의 일과 존 원의 일이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박화백의 인품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해 여름,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하는 그분의 작품을 볼 기회가 생겼다. 수묵화 전시 관람은 처음이었다. 소산 선생의 엄청난 그림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벽을 가득 채운 묵직하고 웅장한 수묵화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통 눈이 쌓인 소나무가 벽면 가득한 그림이 앞에 앉은 화가가 신선 같았다.
(전시를 보고 소산 선생의 대표작과 선생의 지인 40여 명의 에세이를 담은 책을 사서 읽었다. 박대성 화백은 어린 시절 빨치산의 습격으로 아버지가 화를 당하고 자신의 한쪽 팔도 잃게 되었음에도 평생을 오로지 글씨와 그림에 정진하였다. 아래 그림들은 <묵향 반세기- 박대성 화가와 함께>, 이동우 윤범모 엮음. (2016.)에서 발췌함.)
이 그림은 선교장 활래정을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는 장유의 <신독잠>과 <묵소명>의 일부 구절이 화제로 쓰여 있다.
"그윽한 밤 말 없는 공간, 듣보는 이 없어도
귀신이 그대 살피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사심 품지 말 일이다. 처음 단속 잘못하면
하늘까지 큰물 넘치리라. 위로는 하늘이고
아래로는 땅 밟는 몸, 날 모른다 말할 텐가.
그 누구를 기만하랴, 사람과 짐승의 갈림길,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 어두운 저 구석을
내 스승 삼으리라."
"온갖 묘함이 나오는 것은 근원, 침묵만
한 것이 없으리로다. 영악한 자 말이 많고
어수룩한 이 침묵하며, 조급한 자 말이 많고,
고요한 이 침묵하네. 말하는 사람 수고 많고
침묵하는 이 편안하며, 말하는 사람 허비하고,
침묵하는 이 아껴 쓰며, 말하는 사람 싸움하고
침묵하는 이 휴식하네. 도는 침묵 통해 성취하고,
덕은 침묵 통새 길러지며, 말하는 자는
모두가 이와 반대라."
구구절절 새길 말이다. 만월 그림 앞에서 나는 고요해졌다.
아! 불국설경!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너그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참 멋진 할아버지다.
박화백의 한마디가 깊은 울림을 준다.
“어른이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