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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l 07. 2024

달개비

청보랏빛 꽃잎에는

    

  급할 것 없는 산책길. 이곳저곳 눈길을 두며 천천히 걷는다. 중학교 울타리 초록색 철제 울타리 구멍으로 무성하게 자란 달개비 잎이 삐죽하게 내밀고 있다. 중학생들이 생각 없이 복도 밖으로 뱉은 거친 말들이 달개비 잎에 앉기라도 한 것처럼 유난히 뾰족하다.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보아온 풀. 어긋난 잎을 따라 줄기를 따라가면 힘센 거미처럼 억센 뿌리가 땅을 꽉 그러쥔 채 자라고 있다. 더러 꽃이 핀 것도 있어서 청보랏빛 꽃잎 두 장을 토끼 귀처럼 세우고 노란 꽃술을 입처럼 내밀고 있다.


 한해살이풀인 달개비는 닭 볏을 닮았다거나, 줄기가 닭의 창자를 닮았다거나, 닭장 근처에서 자라던 꽃이라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달개비, 닭의밑씻개, 닭기씻개비, 닭의 꼬꼬, 수부초, 압식초, 압자채, 로초, 람화초라고도 부른다는데 이름도 참 많다.


 제주에서는 고넹이할미(고양이할머니)라고 부른다. 달개비 잎이 고양이귀를 닮아 지은 이름일까. 청보랏빛 파란 꽃은 색이 고와 염료로도 쓰인다.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쓰인다는데 먹어본 적은 없다. 전쟁이 할퀴고 지난 가난한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겨웠던 시절, 날이 풀리며 솟아나는 풀이 자라기가 무섭게 쑥, 개자리, 질경이, 달개비, 명아주, 비름나물 같은 풀을 하도 먹어서 입에서 풀 냄새가 났다는 시절에 먹었다는 풀이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 보니 달개비가 나온다. 풀잎에 이슬이 가득 내린 싱싱한 달개비를 으스러뜨리는 모습이 그려지며 싱그러운 그 아침으로 돌아가게 한다.


 “뒷간 모퉁이에서 뒷동산으로 난 길엔 달개비가 쫙 깔려 있었다. 청아한 아침 이슬을 머금은 남빛 달개비꽃을 무참히 짓밟노라면 발은 저절로 씻겨지고 상쾌한 환희가 수액처럼 땅에서 몸으로 옮아오게 돼 있다. 충동적인 기쁨에 겨워 달개비잎으로 피리를 만들면 여리고도 떨리는 소리를 냈다.”



 달개비꽃은 피고 나서 하루면 시들어 버리기에 '짧았던 즐거움'이라는 꽃말이 참 잘 어울린다. 생기를 뿜어내며 주변을 싱그럽게 만들고 있는 달개비를 보면 여름날 뙤약볕 아래 밭에서 일하던 부모님이 함께 보인다.   

       

 오뉴월 보리가 곧 이삭을 팰 시기. 보리밭에는 고넹이할미(달개비)뿐만 아니라 여뀌, 절완지(바랭이풀), 대우리(귀리) 같은 잡초들도 보리밭을 점령하고 있다. 보릿대가 상하지 않도록 허리 굽어 잡초를 뽑을 때 당신들 등은 보리에 묻혀 잠시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보리 이삭 위로 일어설 때는 달개비가 한 줌 가득 들려 있다. 아버지는 그것을 담벼락으로 던진다. 흙 한 방울 없는 돌담에 던져진 달개비는 마르지도 않고 그곳에 거미손처럼 뿌리를 척 뻗어 다시 살아난다. 놀리기라도 하듯 푸른 잎을 싱싱하게 잎을 피워 올리며.


 “에이, 징그런 놈, 저놈의 풀은 죽지도 않아.”  


 일하다 허리를 편 아버지가 푸르게 살아난 달개비를 보고 땀을 닦으며 끌끌 혀를 찬다.


 끝도 없는 농사일. 해가 가고 다시 봄이 오면 또 이어지는 고단한 일들. 풀만 두고 보면 향긋하고 싱그럽지만 밭에 자라는 풀들은 어찌 그리 힘이 센지. 여뀌도 대우리도 그런 풀이다. 잘 뽑히지도 않고 뽑아도 돌아서면 다시 왕상해지는 그악스러운 풀들. 풀과의 지난한 싸움은 여름 내내 이어진다.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질긴 검질(김)이 미웠다. 무더위를 더 무덥게 푹푹 내리게 하던 잡초도 그렇지만 고된 노동을 하는 현실이 더 미웠던 거다. 뙤약볕에 고생하며 검버섯이 생기고 옹이 박힌 손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도록 온갖 노동에 시달려도 더 나은 삶으로 나가는 것은 요원하기만 했던 현실이 답답했다.


 풀과의 전쟁인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얼마 되지 않은 소출을 공판에 1 등품을 받기 위해 비 한 방울 맞지 않게 농작물을 관리하느라 자다가도 비가 올 것 같으면 부모님은 어둠을 뚫고 밭으로 나가셨다. 타작과 가을걷이를 하여 저장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하고 나면 겨우 농한기가 시작된다. 짧은 농한기에도 농기구를 돌보느라 훌쩍 지난다. 아무리 좋은 연장도 다듬고 돌보지 않으면 녹이 슬기에  늘 연장을 갈아 둔다. 낫에 물을 조금 적셔 부싯돌에 갈면 잿빛 물이 녹아 나오면서 갈아진 날이 은빛으로 번쩍였다.


 매일 아침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낫을 가는 심정이 되곤 한다. ‘예술가는 한 조각의 부싯돌을 가지고 그것을 비틀어 장미유 방울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월터 시커트 walter sickert의 말을 생각한다. 가망 없는 돌덩어리에서 즐거움과 시를 발견하듯 내 안에 고인 생각들을 벼리고 다듬는다. 낱말들이 녹슬어 세월의 진흙 속에 파묻히지 않게 하려고 날마다 뭔가를 읽고 뭔가를 쓴다. 시간이 흐르고 그 ‘말도 안 되는’ 글이 벼려지길 기대하면서.


 그 힘든 농사일을 하지 말라고, 열심히 공부해야 그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며 자식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셨다. 공부하는 길만이 살길 같았지만 나는 그리 착한 자식이 아니었다. 제주시에서 자취를 하다가 주말에 용돈을 받으러 집에 가면 농사일을 거들기는커녕 월요일마다 있는 시험 핑계로 어서 제주시로 내뺄 생각만 했다.


 어릴 적 원수만 같았던 고넹이할미. 부모님에게 징글맞은 풀, 달개비. 그 풀을 볼 때마다 고된 농사일에 시달리던 부모님의 햇빛에 익은 얼굴이 겹쳐지곤 한다.


 농사에 방해가 되는 풀이지만 저리 무리 지어 피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평화롭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저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살랑거리고 있으니 다정하기까지 하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치열한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것들도 멀리서 보면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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