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산 중엔 덕유산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등정을 해본 것 같다. 해외로 넓히자면 유럽의 알프스와 몽블랑, 지구의 중심이라는 별칭이 붙은 호주의 울룰루(이건 바위인가..?) 등을 가봤던 기억이 있다. 내 고향 안동에도 주왕산, 청량산, 학가산 등등 높고 울창한 산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과거 언젠가 이벤트성으로 엄홍길 대장님을 필두로 어떤 산을 함께 오른 적이 있었는데, 히말라야 최고봉을 정복한 엄대장님도 빠른 속도로 오르자 숨을 헐떡이는 건 매한가지였다. 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방증이다.
이윽고 산 정상에 오르면 무연가지의 희열을 만끽할 수가 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하늘과 구름, 그리고 별, 바람, 햇살과 맞닿은 그곳에서 그들은 나의 언어가 되어준다.
아프고 외로울 땐 늘 몸을 움직이라고 했던 당신의 말씀을 나는 언제나 산을 통해 따르곤 했다. 혼자서 많은 계절을 앓던 내 안에도 푸르름이 움트는 이유다. 산 중턱에 가만히 앉아 듣는 지저귀는 새소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 만큼이나 매혹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바람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까. 그 소리는 제법 둔탁하며 청숭맞다. 요란하기도 하며, 살을 에워싼 뒤 옹골차게 결을 타기도 한다. 눈쌓인 한라산 정상에서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소리를 한참이나 들었더랬다.
앞으로 많은 산을 가볼 순 없겠지만, 하늘과 제일 가까운 히말라야 능선의 어딘가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지막이 될 산은 후회가 없어야겠으며, 그곳에서 바람의 소리를 다시한번 듣는거다. 바람이 길을 잃지 않도록, 그날의 날씨는 ’맑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