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봄인사를 드립니다.

by 임기헌

가방 속에는 텐트 하나와 노트북 하나, 그리고 엄마가 행여나 당 떨어질 때 먹으라며 한 움큼씩이나 쥐어준 누룽지 사탕이 들어있군요.


1,000km의 나 홀로 여정. 먼저 부산 오륙도에서부터 아름다운 동해 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강원도 최전방 민통선 마을까지 걸을 거예요. 울산, 포항, 강릉, 속초, 정동진 등을 거쳐 북한 땅과 인접해 있는 고성까지 닿는 바닷길이 되겠군요. 이어 대륙을 건너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호밀밭을 따라 걸을 거고요. 무릇 고도를 향하는 쓸쓸한 파수꾼 ’홀든 콜필드‘의 모습을 동경해 왔는지도요.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 걸어가다 보면 모진 네모의 미몽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겠지요. 길 위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미처 닿지 못했던 파랑의 지구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 과정들을 어느덧 마흔다섯에 다다른 중년의 언어로 써내려 갈 생각에 설레기도 하는걸요. 유년시절의 나, 청년시절의 나, 지금 중년의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만큼 진일보했는지, 혹은 퇴보한 건 아닐지, 무척이나 궁금하더군요.


들판의 나무들이 신록으로 물드는 계절즈음, 따뜻한 햇살 내리쬐는 그때에 1,000km의 걸음을 담은 새로운 책과 함께 봬요. <파랑주의보: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라는 제목의 수필집이 될 것 같은데요, 그때가 되면 겨우내 담가놓은 머금주도 꺼내놓을게요. 툇마루에서 함께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요 우리.


기억해 주십사, 하는 읍소와 당부의 마음으로 이렇듯 오랜만에 인사를 전하게 됐습니다. 안부보다는 이기적인 모습이 도드라진 듯하여 죄송한 마음입니다. 기약 없는 다음 책을 항상 기다려주시는 몇몇 찐독자님들과 생일 때마다 선물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들께는 더욱이 면목이 없습니다. 모쪼록 내내 건강하십시오. 티끌만한 그 무엇도 감히 가벼이 여기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특히나 중동전쟁으로 인해 시름이 깊은 요즘이실텐데 부디 지혜롭게 잘 이겨내시고요, 저는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어 훗날 밝은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덧-] 낡은 운동화 끈을 동여 맨 지금은 2026년 3월 31일 8시가 막 지나고 있네요. 이곳 날씨는 구름이 시집가는 여우를 질투하듯 가는 여우비가 흩날리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벚꽃이 만개를 했고요. 옷깃을 여민 저는 첫걸음을 뗍니다. 걸음 마다마다 사랑하는 엄마와 하늘에서 저의 길동무가 되어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요. 밤마다는 태양계 행성들이 친구가 되어줄 거예요. 왜소한 탓에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외로운 명왕성마저도 이번 여정에는 함께해 줄 거라 믿습니다.

작가의 이전글2025년의 응답